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슬퍼도 사는 것과 슬퍼서 사는 것의 차이

창밖에서 흘러들어온 조수미의 ‘나 가거든’ 때문에 일시정지 상태가 된 나, 아 나의 18번, 노래방에서 이 노래를 선곡하면 분위기 확 다운시켜서 귀가 시간을 앞당기게 만드는 불후의 우울곡, 나 슬퍼도 살아야 하네, 나 슬퍼서 살아야 하네, 여기서 ‘슬퍼도’가 주는 무기력감을 ‘슬퍼서’가 의지로 방어하는 이 부분이 좋아서 자꾸만 부르게 되는 노래, 나 가거든. 나는 언제 갈지도 모르면서, 항상 오늘을 내 인생의 마지막 날인 것처럼 살라는 말에 확 꽂혀서 대체로 그렇게 살아왔다. 현재의 감정에 충실하며 당장 눈앞의 사람에게 성실하게, 내일 곧 죽어도 괜찮다는 심정으로 오늘에 미련을 갖지 않도록. 그래서 나는 오늘도 건재하다, 그런데 마냥 건재하기만 하다, 이게 감사하지 않다는 소린 아니다, 당연히 감사하다...

미친 것 같은 세상에 미칠 것 같은 사람들

하늘은 맑고 높고 햇살은 청결하고 바람도 순결한데, 이런 자연이 태풍을 품고 있다니 이번 주말도 녹록지 않겠다. 코로나는 끝날 때까지 끝이 아니고, 새로운 전염병도 슬슬 시작되고 있고, 기후변화에 따른 재앙은 지금도 감당이 안 되는데 이게 시작이란다. 파키스탄 국토의 3분의 1이 폭우에 잠기는 걸 보면서 우리나라 폭우는 그나마 낫네 해야 하는 게 기후적 위안이라면 위안, 남의 불행을 나의 안도로 삼는 몹쓸 인간성, 그러나 어쩔 것인가. 정치 이슈로 가면 더 미친 것 같은 세상, 내가 잘되는 건 이미 포기했으니 네가 안 되는 걸로 목표를 바꾼 사람들의 목숨을 건 격투장. 우리 사회가 다른 분야는 일류인데 정치만 삼류라는 그런 얘길 꽤 오래전부터, 마치 기원이 모호한 오래된 경전 속 글귀처럼 구비문학으로 전..

“왜 나만 갖고 그래?”

세상이 다 그러면서, 사람들이 다 그러면서, “왜 나만 갖고 그래?” 이 유명한 문장을 남긴 사람은 지금 세상에 없지만, 이 말의 유용성은 점점 더 빛을 발하고 있다. 너라면 안 그럴 거 같아? 너나 나나 다 같은 욕망의 화신인데, 솔직히 말해 기회가 없어서 죄를 못 지은 거지, 너라고 별수 있어? 약자라서 법 앞에 납작 엎드려 산 걸 마치 양심 때문인 듯 포장하지 마, 그런 가식이 더 역겨워. 현 사회 우리가 마시는 공기는 이런 느낌? 우리 사회만 유독 가파른 변화의 소용돌이에 있는 것도 아니다. 전 세계가 새 판짜기에 돌입했으며, 그 바람에 기존 질서의 전복이 여기저기서 일어나는 중이다. 명분 따위 개나 줘버려, 이제부턴 가면 벗고 쌩얼굴로 노는 거야, 어차피 대중도 예전의 대중이 아니라서 위선 떠는..

범죄도시2 vs 니 부모 얼굴이 보고 싶다

오랜만이다, 니 부모 얼굴이 보고 싶다 같은 영화가. 외면하고 싶고 덮어놓고 싶은 진실을 굳이 꺼내 보여주며, 전신거울 필요 없다고, 손거울만 있으면 된다는 대중을 굳이굳이 전신거울 앞에 세워놓는 영화, 그래서 끈적하고 기분 나쁜 일상의 공포물. 인정하자니 내 얼굴에 침 뱉기, 부인하자니 내 정신에 흙탕물 붓기, 어정쩡 타협하자니 내 영혼을 건조기에 말리는 느낌? 그렇잖아도 외모도 오징어인데 내면마저 반건조 오징어가 되게 만드는 영화. 관객은 영화를 보는 그 잠깐만이라도 현실에서 벗어나고 싶다. 그래서 범죄도시2가 흥행에 성공하는 거 아닌가. 선악구도 확실한 상황에서 정의의 슈퍼맨이 통쾌하게 악인을 작살내주는 서사는 어쨌든 대리만족감을 준다. 사람을 생선처럼 다루고 화면 전체가 피칠갑이 되도, 이 모든 ..

메타버스와 영성의 시대

유튜브에 올라와 있는 어마어마한 영성 관련 영상들을 보면 드는 생각, 아 종교의 시대가 가고 영성의 시대가 온다더니 그때가 지금인가? 내가 보는 영상들의 친숙함엔 알고리즘의 수고스러움이 한몫하겠지만 그 알고리즘이 영상 제작까지 하는 건 아니니까, 질적으로나 양적으로나 영성 폭발의 시대라는 말이 실감 난다. 그렇게 개인주의와 글로벌이 만나는 지점에서 초자연성이 주목받는다. 즉 인터넷은 전 세계를 하나로 연결하는데 그 연결망의 단위가 개개인이다. 그리고 각 개인은 자신이 선택한 세계 속에서 살아간다. 인터넷이란 우주 속에 우리 각 개인은 모두 독자성을 가진 행성이라니, 놀랍다. 인터넷은 영적 전선인 텔레파시처럼 작동한다. 같은 진동끼리 끌어당기고 주파수를 맞추어 시크릿의 세계를 이룬다고 말하는 것과 유튜브의..

윌 스미스 폭력 사태를 대하는 우리의 반응, 유머와 조롱의 경계

유명 배우 윌 스미스가 생방송 중인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크리스 록의 뺨을 때리는 모습이 전 세계로 전파를 탔다. 헉! 세상에 이런 일이! 그 장면이 너무 낯설어서 순간 연출인가? 헷갈릴 정도였다, 현장 분위기도 그랬단다. 시상자인 크리스 록의 농담이 윌 스미스의 아내인 제이다 핀켓을 화나게 해서 그랬다는 건데, 참 예측불허의 시대다, 별일이 다 일어난다. 거기다 제이다 핀켓은 본인도 유명 배우다, 사생활이 기사가 되는 직업군, 자신의 외모가 곧 고급상품이며 자신의 인생이 곧 자산가치인 셀럽. 이에 대한 사회적 합의가 있기에 고액의 출연료와 광고료가 성립되는 것이다. 그런데 이게 무슨 일? 그것도 넘사벽 셀럽들의 파티, 대중에게 영화라는 상품의 가치를 최대치로 끌어올리는 행사인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그런데..

종교는 지금 어디쯤 가고 있을까?

오늘날 21세기 한국에서 종교란 무엇일까. 코로나19로 수세에 몰려 눈치만 보던 종교계가 요동치는 대선판에서 반짝 주목받기도 했고, 때아닌 종교전쟁을 불러와 가뜩이나 비호감 대선을 더욱 비호감스럽게 배가시키기도 했다. 한껏 순화해서 비호감 대선이지 본질은 혐오 대선이고 증오 대선 아닌가. 그 말은 곧 내가 지지하지 않는 반대편 후보가 당선되면 심적으로 승복하기 어렵다는 건데, 거기에 혐오와 증오의 숟가락을 얻는 종교계, 대단하단 말밖에 안 나온다. 할렐루야! 문화재 관람료 비판이 계기가 된 조계종 스님들의 승려대회, 신천지·무속정치를 규탄한다는 그리스도인들의 성명 발표, 그리고 시도 때도 없이 열리는 시국기도회 등 2022 대선에서 각종 종교단체는 소속집단명으로 또는 개인명으로 자신의 정치적 견해를 유감..

종교와 인간 2022.03.27

이터널스, 인간은 창조신의 고단백 지적 영양갱

마블의 세계관이 더 갈 데가 없어졌다. 극단적인 지구멸망 음모가 있어야 영웅의 등장에 개연성이 생기는데 악당으로 우주의 질서 유지자 타노스까지 나온 마당에 더 이상 영웅을 돋보이게 할 빌런의 존재가 마땅치 않은 것이다. 스펙터클의 영웅 서사를 위해 스토리를 장엄하게 만들어줄 빌런, 왜냐면 빌런이 시시하면 영웅도 시시해지니까. 그래서 영화 이터널스는 악당으로 최고 지존인 창조신을 등장시켰다. 행성을 계란 껍데기 삼아 성장하다가 완성되면 깨어나서 먼저 태양을 만들고 그 태양을 중심으로 태양계를 만들어 수십억의 생명을 창조하는 존재 셀레스티얼, 역할은 딱 창조신인데 문제는 하나의 셀레스티얼이 탄생하기 위해선 기존 행성의 모든 생명체가 전멸한다는 거. 그러니까 지구 행성 깊숙한 곳에 있는 셀레스티얼이 태어나려면..

2022 대선과 에난티오드로미아

내일이면 대선이 끝난다. 사전투표율 36.93%, 역대 최고의 사전투표율이라 하나 사전투표 시행이 2013년부터이니 10년 된 제도가 점차 정착되는 현상으로 보인다. 다만 역대 최악의 비호감 대선인 만큼 높은 사전투표율이 양 진영에는 막판 결집의 신호로 수신된다. 안철수 단일화로 역풍이 불었을까 기대하는 진영과 순풍의 흐름에 속도가 붙었을까 희망하는 진영 서로가 높은 사전투표율이 자신들에게 유리하다고 하면서 내심 불안한 마음도 감추지 못한다. 정치권이 이번 선거만큼 국민 눈치를 본 적이 있었던가? 세대별 지역별 성별 점검하고 행여나 빠질세라 꼼꼼하게 눈치를 보고 또 본다. 국외적으론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국내적으론 산불재난 국가위기경보 '심각' 발령, 그리고 이제는 익숙해진 코로나19의 일상화 등 ..

넷플 영화 ‘돈룩업’, 이러다 진짜 다 죽음

동시대 같은 공간에 살고 한 언어를 사용해도 소통이 되지 않는다. 왜? 정치인은 권력 때문에 사업가는 돈 때문에 방송인은 시청률 때문에, 그럼 일반인들은? 다수의 보통 사람들도 무겁고 불편한 진실보단 유쾌하고 자극적인 가십이 좋다. 그래서 6개월 후 혜성이 지구와 충돌해 인류가 다 죽을 거란 박사수료생의 절규는 인기 절정의 여가수가 받은 공개 프러포즈에 묻혀버린다. 듣고 싶지 않으니 안 들리고 보고 싶지 않으니 안 보인다. 그래서 제목이 ‘올려다보지 마’, 혜성 그까이거 떨어지면 뭐, 오히려 돈이 되는 광물을 덕지덕지 달고 오니 부자가 더 부자 되는 절호의 기회지, 이래서 서민은 부자가 못 되는 거야, 눈앞에 온 기회를 잡을 줄 몰라. 그렇게 세계 패권국인 미국은 온 인류가 최선을 다해 공동의 노력을 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