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교와 인간

종교는 지금 어디쯤 가고 있을까?

아난존 2022. 3. 27. 12:52

 

오늘날 21세기 한국에서 종교란 무엇일까. 코로나19로 수세에 몰려 눈치만 보던 종교계가 요동치는 대선판에서 반짝 주목받기도 했고, 때아닌 종교전쟁을 불러와 가뜩이나 비호감 대선을 더욱 비호감스럽게 배가시키기도 했다. 한껏 순화해서 비호감 대선이지 본질은 혐오 대선이고 증오 대선 아닌가. 그 말은 곧 내가 지지하지 않는 반대편 후보가 당선되면 심적으로 승복하기 어렵다는 건데, 거기에 혐오와 증오의 숟가락을 얻는 종교계, 대단하단 말밖에 안 나온다. 할렐루야!

 

문화재 관람료 비판이 계기가 된 조계종 스님들의 승려대회, 신천지·무속정치를 규탄한다는 그리스도인들의 성명 발표, 그리고 시도 때도 없이 열리는 시국기도회 등 2022 대선에서 각종 종교단체는 소속집단명으로 또는 개인명으로 자신의 정치적 견해를 유감없이 드러냈다. 종교의 자유가 있는 나라에서 민주주의 사회의 한 시민으로 유권자의 권리를 행사하겠다는데 그게 뭐 대수냐, 종교인이라고 정치적 성향 없을 것이며, 신앙인이라고 이슬만 먹고 살진 않으니 말이다.

 

특정 종교가 국교인 나라에선 종교가 곧 정치권력이지만 우리나라처럼 종교의 자유가 보장된 민주주의 국가에선 신자수가 곧 권력이다. 그러니 규모가 큰 제도종교일수록 정치권도 눈치를 안 볼 수 없다, 유권자는 소중하니까. 그런데 문제는 그 유권자의 한 표가 소속집단의 입장대로 행사되지만은 않는다는 것이다.

 

이런 현상은 2022 대선 기간 내내 보여준 한국 사회의 전반적인 모습이었다. 중앙조직과 하부조직의 정치 성향이 다를 때, 중앙조직 내 구성원 간의 정치 성향이 다를 때, 하부조직 간에 서로 정치 성향이 다를 때 각각 성명서를 냈다는 거, 이점이 흥미롭다. 개인투표, 비밀투표가 보장된 사회에서 굳이 정치적 견해를 공개적으로 밝히는 행위, 굳이 성명서를 돌려 쪽수의 위력을 과시하는 행위, 왜지?

 

성명서는 이성적 행위고 주술은 미신적 행위라서? 진짜? 기도는 사랑의 행위고 굿은 저주의 행위라서? 설마? 세상에 어떻게 만 선하고 에 동조하지 않는 타인은 모두 악한 존재일까! 그게 이성이라면 그런 이성으로 여전히 중세를 살고 있다는 건데, 창창한 21세기 포스트 모던 시대를 종교가 어떻게 넘어가려고 그러는 걸까?

 

그런데 정작 쓸쓸한 일은 이런 종교계의 선언들이 자신의 영토 안에서만 뜨겁고 의롭다는 것이다. 이렇게 종교는 점점 게토화되고 말까? 아마도? 지금 당장이야 기존 신자들에 의해 교세가 유지되겠지만 종교인들이 소도에 고립되는 건 시간문제다. 길게 봐도 지금의 핵심축인 60대가 80대가 되는 15~20년 후면 종교계 지도가 확연히 달라져 있을 것이다. 이런 징후는 정치권과 아무 이해관계도 없는 일반 국민마저 정신줄 놓을 정도로 치열했던 이번 대선에서 여러 차례 나타났다.

 

일단 종교를 대하는 대중의 태도에서 드러난다. 시사 방송에서 진영논리를 대표하는 패널들이 나와 도저히 상대와 말이 안 통한다고 판단될 때, 그 정도면 종교영역인데 무슨 수로 토론이 가능하겠냐, 남의 신앙은 건드는 거 아니다. 이렇게 말하면 더 이상 대화가 이어지지 않고 싸움이 중단된다. , 신박하다! 대립이 극도로 첨예하여 어찌해도 소통할 방법이 없을 때, 그렇다고 쓸데없이 상대와 척지고 싶지는 않을 때, 저 정도면 종교지, 이렇게 상식 밖의 열외 구역을 설정해서 갈등을 해결하는 것이다. 그러니까 대중은 구태여 종교에 시민성이나 보편성을 요구하지 않는다는 거, 이점이 핵심이다.

 

그다음 주목할 점은 종교 관련 기사에 대중의 관심이 매우 적다는 것이다. 코로나 초반에는 신천지나 몇몇 개신교의 방역 위반 문제로 부정적인 시선이 압도적이었으나, 그것도 시간이 지날수록 코로나가 일상화되면서 지엽적인 사건으로 정리되고 있다. 그보단 대선정국에서 보여준 종교인들 간의 정치적 입장 차가 조금 더 요란했지만, 이 역시 대중적 주목도가 그다지 높진 않았다. 이번 대선이 가진 특이점, 조각조각 갈라치기의 순작용인지 부작용인지, 잘 알려지지 않은 단체까지 모두 정치세력화를 이뤄 이해 당사자로서의 자기 목소리를 내는 통에 종교단체의 각종 목소리도 이 중 하나로 위치되었다. 2022 대선만큼 세대별 지역별 성별 특화되고 분절된 욕망의 소리가 구석구석 숨지 않고 드러났던 적도 없었으니까.

 

그렇게 종교는 더 이상 도덕적으로 우월한 지위도 갖지 않으며, 선진문물의 상징이었던 과거의 영광도 사라져 버렸다. 그보단 오히려 미래 세계에 잘못 떨어진, 과거에서 날아온 시간 여행자 같은 모습이다. 그래서 포스트 모던 시대를 살아가는 중세인처럼 변화된 환경에 적응하지 못해 경직되고, 그런데 그들끼리는 진지하고 엄숙해서 그런 광경이 사뭇 기이해 보이기까지 한다.

 

그럼 다음 단계는? 종교에 아직도 기회가 있을까? 세상의 변화가 지나치게 빠른데다가 전환기의 혼란을 맞고 있는 요즘, 한국의 종교인들은 점점 자신들만의 커뮤니티 밖으로 나오지 못하게 될 것 같다. 그 안에서만큼은 세상의 변화 속도와 무관하게 자신들만의 천국과 지옥을 건설할 수 있기에, 그 게토이며 소도이며 아미쉬 같은 공동체에서 뚜벅뚜벅 세상 밖으로 걸어 나갈 필요성을 느끼지 못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