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크라이나 사태를 보면서 든 생각, 아! 우리 인간은 이러다가 3차 세계대전을 일으킬 수도 있겠구나, 놀랍다!! 아프간 사태는 그 지역이 잦은 분쟁지역이라 어쩔 수 없나 싶었고, 미얀마 사태는 군부독재가 부른 내전이니 특정 국가의 문제라 치부했다. 그런데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은 국가 간의 대립이 국경을 넘어 전 세계에 전운을 감돌게 하고 있다.
그렇구나! 인류는 우주를 얘기하는 21세기에도 충분히 원시적이고, 지구는 인간들이 모여 사는 한 어디나 화약고구나. 카인이 언제 분노를 폭발할지 모르는 세상에서 아벨은 늘 조심하고 신중해야 목숨을 유지할 수 있구나. 그러게 나쁜 놈을 왜 건드려? 지 형인데 그 성질 몰랐어? 신께 사랑받는 사람일수록 겸손해야지, 아니 사랑을 받아도 안 받은 척해야지, 사람이 그렇게 유도리가 없어?
남의 나라 전쟁을 보면서, 아! 우리나라가 아니라 다행이다, 안심하는 비루함. 아! 우리도 항상 긴장하고 조심해야지, 교훈을 찾는 초라함. 카인으로 흑화되지 않으려면, 아벨로 안전하게 살려면, 이래저래 인간이란 존재는 비루해서 아프고 초라해서 서글프다.
신앙인이라고 뭐 달라? 다 그렇게 사는 거지, 그런데 정말 그럴까? 그래도 다른 게 뭐 조금이라도 있어야 하지 않을까? 예컨대, 아벨의 억울함을 갚아줄 신의 존재? 더하여, 죽었지만 죽음은 끝이 아닌 새로운 시작이란 믿음? 그러니까 우크라이나의 결사항전은 역사가 기릴 것이란 위로?
아마도, 사후의 어떤 보상보다도, 인간에게 신앙의 힘이란, 내가 나의 비루함과 초라함을 모른 척 덮지 않고 자신을 성찰함으로써 아주 작고 더딘 한 발짝이라도 신적 존재에 좀 더 다가가게 만드는 용기, 내가 ‘나’로 각성하고 존립하게 해주는 그런 초인적 용기가 진짜 신의 은총이 아닐까 싶다.
'종교와 인간' 카테고리의 다른 글
종교는 지금 어디쯤 가고 있을까? (0) | 2022.03.27 |
---|---|
[안내] 계시록(묵시록) 6주 강좌 (0) | 2022.01.10 |
고난을 대하는 자세, 토빗의 아내 안나 (0) | 2021.12.15 |
성서적 종말론의 실체, 이게 끝인가 보오. (1) | 2021.08.13 |
그 많은 마르타들은 이제 없는가? (0) | 2021.06.15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