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통과 관계 103

관계, 그 아스라한 경지

인간관계가 우주개발보다 어렵다. 우주개발은 과학 기술의 발달만큼 더 많이 발전할 거란 기대가 있고, 그러다 외계인을 만나 우주어를 배워야 할 날이 온다 해도 그럴 수도 있겠다 싶다. 반면 인간관계는 태초 이래 지금까지 시기, 질투, 오해, 원망, 증오에 가끔 살인까지 근거리 관계일수록 틀어질 발생 빈도수가 높을 수밖에 없는 게 필연적 구조다. 알아야 싫어도 한다. 타자에 대한 싫음이 비록 자신의 이기심과 편협함에서 비롯됐다 해도, 아 그게 인간인걸 어쩔 것인가. 교육으로 교정 가능하다고? 그럴 리가, 인간 본성의 자연적 발화를 교육이라 생각했던 루소도 사교계의 인간관계서 쓴맛을 보고 좌절과 절망으로 울부짖었는데? 물론 만나는 사람 모두가 하나같이 나를 싫어하는 건 아니다. 다만 인간이란 게 가깝게 지내다..

소통과 관계 2020.10.15

진실과 사실 사이

정보가 너무 없던 시대에는 정보를 생산하고 유통하는 것이 권력이었고, 이 권력은 독점되어 누구나 접근할 수 있는 게 아니었다. 검찰 출입 기자들의 받아쓰기 기사가 문제가 됐던 것도 정보를 생산하고 유통하는 과정상의 관행, 그러니까 특권은 폐쇄적이고 배타적이어야 특권이므로, 검찰 정보를 받아서 보도하는 게 언론 권력이란 얘기다. 이때 진실이란 소수가 선택한 사실의 조합 내지는 재구성이다. 그런데 현재 우린 정보 과다의 시대에 살고 있고, 그 선택권이 독자 또는 소비자에게 넘어왔다. 팟빵 시사방송 간에는 진보층 내의 대립이, 유튜브 시사방송 간에는 보수층 내의 대립이 두드러진다. 이걸 재밌다고 해야 할지 다양성 측면에서 좋아졌다고 해야 할지 판단이 서지 않는다. 이런 형국에서 진실이란 정보의 의도적 덧칠을 ..

소통과 관계 2020.09.14

세상에서 가장 어려운 일, 홀로서기

내 눈의 들보가 보이지 않으니 인간이다. 남의 눈에 티끌만 보이니 인간이다. 인간은 그런 존재다. 진영논리만큼 진부하고 비루한 것도 없지만 진영논리만큼 안심되고 변치 않는 것도 드물다. 그래서 보통의 인간이라면 어느 곳이든 소속되고 싶고, 이왕 소속될 거라면 내가 잘 보호받을 수 있는 곳이었음 한다. 안전에 대한 욕구가 죄는 아니니까. 싸워야 하고 이겨야 하고 잘나야 하고 짓밟아야 하고, 육식의 세계에서 초식의 생명체들은 살아내기가 참 버겁다. 도란도란 그냥저냥 살자고 해도 인류는 그래 본 적이 없으니 그걸 꿈꾸지 못한다. 한 번도 경험해보지 못한 세계라 상상도 할 수 없다. 더 많이 가져 봐야 의미 없는 세상, 재산과 지위가 인격이 아닌 사회, 그런 세계에서 살아본 적 없으니 그런 세계를 지향할 수 없..

소통과 관계 2020.07.30

박원순, 자살과 그 이후

무엇이 진실일까? 진실이 과연 밝혀지긴 할까? 더 많은 사람이 믿는 쪽이 진실로 기억되는 걸까? 박원순 시장은 스스로 세상을 떠났으나 세상은 그를 쉽게 보내주지 못할 거 같다. 한 사람의 생애가, 인권변호사로 시민운동가로 최장수 서울시장으로 쌓아 올린, 이 정도 살아내기 평탄치 않은 그런 사람의 일생 업적이 덧칠되는 걸 보는 마음이 참 아쉽고 착잡하다. 자살로는 징벌이 되지 않는 걸까, 살아서 죗값을 치르는 것이 최선이란 주장이 물론 윤리적으로 백번 옳다. 자살을 미화하거나 자살로 죄를 덮는 게 정당한 방법이 아니라는 것도 반박의 여지가 없다. 그는 공직자였고 유명인이었고 자신의 오래된 지지층을 가진 정치인이었기에 더더욱 자살이 선택지에 있어서는 안 되는 위치였다. 그러나 이 모든 당위적 사실에도 불구하..

소통과 관계 2020.07.18

적의와 악의의 구분

인간으로 태어나 산다는 건 크고 작은 적의들과 끊임없이 만나는 일이다. 인간은 참 알 수 없는 부분에서도 아주 쉽게 적의를 갖게 되고 그것이 적의인지도 모른 채 상대에게 그 불편하고 어두운 감정을 드러낸다. 카인이 아벨을 죽인 것도 시기심에서 촉발된 적의였다. 카인을 더 미치게 했던 것은 아벨의 순수함이었으리라, 아벨이 인간에 대한 이해가 있었다면 그렇게 해맑게 자신의 제물을 신께서 기쁘게 받으셨다는 얘긴 하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밝은 사람의 얼룩 없는 빛은 어두운 사람의 얼룩진 내면을 너무 쉽게 드러내고 만다. 아벨은 카인을 잘 몰랐기에 카인에게 정직했지만, 바로 그 정직함이 카인의 분노를 폭발시켰다. 우리 인간은 아벨 부류보다는 카인 부류가 더 많다. 그래서 겸손을 생존의 조건으로 요구받는다. 살리에..

소통과 관계 2020.05.2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