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어준 11

나는 나를 불신한다

나는 사람의 이면을 볼 줄 모른다. 그걸 보라는 말을 20년 넘게 들었지만, 안 보이는데? 뻔히 보면서 모른 척하는 게 아니라 안 보이는데 어쩌란 말이냐! 그래서 드는 생각, 나만 그런가? 놉! 그랬다면, 열 길 물속은 알아도 한 길 사람 속은 모른다는 속담이 지금도 유용할까? 그렇다면 다른 사람들은 대체 어떻게 남의 속을 안다고 할까? 그렇다! 일단 관계 초반엔 불신하고 보는 것이다. 선의를 가장한 속내가 있을걸? 그게 인간이야, 그러면서 마음을 주지 않으니 크게 상처받을 일도 뒤통수를 맞을 일도 생기지 않는다. 그다음 관계 중반엔 상대의 말이 아니라 행동에 따라 판단하는 것이다. 세상 선한 얼굴로 선한 말들을 해봐야 행동이 그렇지 않으면, 역시 내가 생각한 게 맞았어, 확신이 선다. 그래서 관계 후반..

나의 정치 이력서

나는 정치하는 인간들이 싫다. 그래서 20대 때 나의 정치관은 기득권을 뺏기지 않으려는 자, 보수. 기득권을 뺏으려는 자, 진보. 이렇게 구분했다. 그렇다! 나는 정치 혐오자다. 그래도 투표는 항상 기득권을 뺏으려는 자들 쪽에 일관되게 던졌다.왜냐, 내가 민주주의 사회에서 살고 있다는 거의 유일한 체감 행위인 투표, 그것만큼은 꼭 행사하고 싶었고, 이왕이면 억울한 사람이 적은 사회가 그나마 살 만한 사회니까, 또 이미 많이 누린 사람들은 양보해도 되니까, 그리고 무엇보다 취미활동과 생존활동은 그 무게가 다르니까. 그러다 나꼼수를 알게 됐고, 정치는 일상이란 구호에 신선한 충격을 받았다. 정치 얘기를 저렇게 희화시켜서 낄낄대며 해도 괜찮네? 심각하고 진지하고 추악한 것만이 정치가 아니네? 이렇게 나꼼수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