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통과 관계

잘 먹고, 잘 사세요~

아난존 2019. 4. 4. 14:58




뉴스공장에서 김어준이 오세훈에게 던진 말, “잘 먹고, 잘 사세요~”, 듣는 순간 웃음이 빵 터졌다. 전파용 멘트치고는 참 사적인데 뉴스공장 애청자로서 김어준이 누군가에게 이렇게 사적 감정을 방송에서 드러낸 적이 있었던가, 더구나 나꼼수 시절의 김어준은 오세훈을 친구야~ 이렇게 부르면서 절친이라고 했는데, 아마 이때까지도 오세훈이 영리하진 않지만 야비한 인간이라고 생각진 않았던 듯하다. 그래서 조롱의 수준이 농담 차원이었다면 오늘 뉴스공장에서의 김어준은 분노를 숨기지 않았다. 그만큼 노회찬에 대한 오세훈의 발언은 아무리 선거용이라 해도 지나쳤으니까, 인간에 대한 예의가 진짜 1도 없었으니까.

 

그런데 왜 잘 먹고, 잘 사세요.”일까? 우리의 감성은 참 모질지 못하다. 기껏 분노가 터진 일갈이 잘 먹고, 잘 사세요.’라니, 물론 반어법에 의한 비꼼이지만, 그래도 참 심성이 순하긴 하다. 불치병 걸려 신경세포 하나하나 모두 아파서 뒹굴다가 자신의 잘못을 뼛속 깊이 뼈저리게 후회하고 이제 겨우 맘 고쳐먹었다 싶지만 그렇게 회개한 채로 새 인생 살 기회 1도 없이 회한에 가득 차서 죽어버려라, 이렇게 말하지 않고 시크하게 쿨하게 잘 먹고, 잘 살아라.’로 퉁쳐버린다.

 

먹고사니즘, 나는 이게 진짜 모든 걸 용서받을 수 있는 기준이 될까 싶다. 먹고사는 수준도 사람마다 다른데 너나 나나 누구나 먹고 사려면 할 수 없지이거 한 문장에 다 퉁쳐 주는 거, 그렇게 내 안의 불의에 면죄부를 주고 이기심에 자양분을 제공하면서, 문제는 자신도 그러면서 남 탓 세상 탓, 그럴 바엔 공격의 방향이나 외부로 돌리지 말았음 하는 바람이 있다. 너무 무리한 바람인가?

 

그러니까 잘 먹고, 잘 사세요.’는 먹고사니즘을 내세워 퉁치는 것까지는 알았어, 알았으니까 다른 변명만은 말아줘, 정의감 코스프레, 욕망의 합리화, 그런 것만은 절대 말아줘, 그냥 잘 먹고, 잘 살고 싶어서 그런다고, 차라리 그냥 그렇게 인정하고 딴소리나 하지 말아줘, 대의명분 갖다가 더럽히면 사회 질서만 더 꼬질꼬질 엉키니까 제발 그냥 니 마음의 평화, 니 영혼의 안식, 니 뱃속의 영양만 챙기라고, 그런 말이다.

 

그러니까 '잘 먹고, 잘 사세요.'는 먹고사는 거 외에 다른 가치, 지키고 싶은 신념 따위 1도 없는 인간아, 너 그런 거 알았으니까, 앞으로 그렇게 살지 않는 사람, 그렇게 살아오지 않은 사람, 그렇게 살다 가지 않은 사람까지 니 눈높이에 맞춰서 발설하지 말아줘, 돈 많다고 하루 일곱 끼 먹는 거 아니고, 비싼 거 입었다고 인격 높은 거 아니며, 고급진 음식에 영혼도 고급해지는 거 아니니, 먹고사는 게 최고의 순정 가치인 너나 잘 먹고 잘 사세요, 그런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