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통과 관계

‘기레기’와 엘리트주의

아난존 2019. 4. 3. 20:56




기레기란 언론 권력에 익숙한 일부 기자와 익숙해지고 싶은 일부 기자들이 특권의식을 세세토록 누리고 싶은 마음에 시대 흐름에 역행하다가, 그걸 못마땅하게 생각하는 대중들에게 권력의 댕댕이란 의미로 불리는 지칭이다. 네티즌들의 거침없는 이 기레기란 표현은 예전 기자들이 가지고 있었던 직업적 자부심과 우월감을 가차 없이 무너뜨린다. 되지도 않는 엘리트 의식 따위 개나 줘 버려, 엘리트도 아닌 것들이 왜 의식만 고상한 척하는 거야, 그래 봐야 권력과 돈의 댕댕이면서, 이게 기레기를 보는 사람들의 심리이다.

 

그런데 우리나라가 엘리트 사회였던 적이 있었나? 신분제 사회였다가 식민지로 전락했는데, 그럼 가문 좋은 양반 중 국운을 내 운명으로 자각하는 엘리트가 몇 명이나 있었나, 싶을 정도로 우린 국가로부터 혜택받은 지배층에 대한 신뢰가 약하다. 현재 우리 사회가 집단지성이 가능한 대중사회로 빠르게 진입할 수 있었던 이유도 그만큼 우리 한국이 엘리트 기반으로 이루어진 사회가 아니기 때문이다.

 

엘리트주의는 자신이 그저 좋은 환경에서 태어났다는 이유만으로 받은 혜택을 사회에 돌려줘야 한다는 소명의식에서 나온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엘리트 사회였던 적이 없었다. 특권만큼 의무를 이행하는 것이 엘리트의 기본 자질이므로 우리 역사는 단연코 엘리트층을 가진 기억이 없다.

 

다만 이상한 것은 우리 백성들이 어이없게도 나라가 위급하면 엘리트도 아닌데 목숨 걸고 나선다는 것이다. 민란도 혁명도 화끈하게 못 하는 겁 많은 백성들이, 쓸데없이 지배층까지 배려하는 주제넘은 백성들이, 막상 나라에서 받은 것도 없는 이 백성들이 참 이상하게도 의병질은 화끈하게 해낸다. 참 이상한 나라의 이상한 백성들이다.

 

아마도 그것이 촛불혁명의 저력일 것이다. 겁 많은 백성이라 누구 하나 다칠까 전전긍긍하면서도 끈질기게 추위를 이기고 토요일마다 광장에 몰려나온 의병의 후손들, 혜택받은 것 없는 사람들이 꾸역꾸역 의무는 다하는 내심 소심한 백성들, 실상 혜택받은 자들은 기회주의 속성으로 눈치만 보는데, 그러면서 우리 사회에 존재하지도 않는 엘리트 의식으로 권력의 댕댕이가 되는 것을 영광으로 아는데, 이 빌어먹을 백성들은 참 잊지도 않고 나라의 위기 때마다 한사코 죽자고 의병질을 해댄다. 그러니 참 이상한 백성들이라고 할밖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