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까지 나를 움직여 온 것은 무엇일까, 생각해 보니 그건 안티테제였다. 이건 아니잖아, 이건 너무하잖아, 같은 반감에서 나온 의지가 행동의 방향성을 결정했다. 그래서 생긴 합리화가, 나를 이렇게 만든 건 니들이잖아, 그러니 내게 권위에 대한 예의를 바라지 마.
그래서 드는 의문 하나, 그렇다면 나를 이루는 본질은 무엇일까, 스물세 해 동안 나를 키운 건 8할이 바람이라던 서정주는 이후 친일과 친독재의 행보를 보였다. 그러니 내가 진짜 진짜 좋아하는 게 바람이지만 찜찜해서 패쓰~, 역시 안티테제인가, 사실 이제는 더이상 내가 바람처럼 살다 갈 수 없음을 안다. 바람처럼 살다 가기엔 지나치게 몸도 마음도 무겁고, 그러기엔 쓸데없는 상처의 무게까지 알아버렸고, 그러기엔 정말 구석구석 세상과 인간을 불신하게 되어 버려서, 이런 줸좡, 줸좡...
권력에 대한 반감, 불의에 대한 불쾌감, 부조리에 대한 거부감, 비굴함에 대한 역겨움, 이런 종류의 부정적 인식에 대한 부정적 감정을 빼면 나에게 진심 무엇이 남는 걸까?
그래서 드는 반성 하나, 시간이 ‘나’라고 빗겨 갈까, 죽을 때까지 이렇게 안티테제로 존재하다 가는 것은 나에 대한 예의가 아닌 거 같다. 그건 나한테 너무 교양 없는 짓 아닌가, 내가 비록 허례허식의 교양을 질색하지만, 형식 없이는 내용도 드러나지 않는 거니까, 나는 나에 대한 형식적 예의를 좀 더 갖춰야 한다.
그럼 어떻게? 이제 와서 내가 나의 순 욕망을 짚어낼 수 있을까, 애오라지 나만을 위한 일을 모든 관계와 배후를 밀어놓고 오롯이 찾아낼 수 있을까, 아니, 그런 게 있긴 한가, 나만 이러고 사는 것도 아닌데, 대다수가 이렇게 자신이 누구인지, 무엇을 욕망하는지 모르면서 살잖아, 나만 그런 거 아니잖아.
그렇다! 나만 그런 게 아닌 것만은 완전 분명하다. 그러나 그렇기 때문에 나도 그래야 하는 것은 아니다. 여기서부터 다시 시작해야 한다. 남들이 그러니까 나도 그런 것도, 나도 그래야 하는 것도 아니라는 거, 모든 주변 환경을 끊고 완전히 정전된 상태에서 다시 출발하는 것, 그래야 나는 비로소 테제로서 살아갈 수 있을 것이다.
배경 지식과 사전 경험을 판단중지하고, 몸과 마음과 영혼까지 리셋을 해보자. 윤회했다고 생각하고 처음으로 돌릴 수 있는 것들을 최대한 다 돌려보자. 상처받기 전으로, 다치기 전으로, 나빠지기 전으로, 어두워지기 전으로, 그렇게 태초에 던져진 원래의 나로 돌아가 보자. 그렇게 다시, 그렇게 처음으로, 그렇게 새롭게 나의 기원이 돼 보자, 더 늦기 전에, 이러다 그냥 나도 모르게 먼지처럼 죽어버리기 전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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