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통과 관계

약자가 악인이 되는 루틴

아난존 2019. 4. 20. 02:50




누구를 약자라 할 수 있을까? 사실 우리 보통 사람들은 대개가 약자일 것이다. ? 우리 다수는 대세에 약하고 시류를 따른다. 이유는 간명하다. 자기 세계가 있는 사람, 자기 생각이 있는 사람이 아주 희소할 뿐만 아니라, 교육을 통해 사회화를 거치면서 자신이 맡은 역할에 충실하지 않으면 도태됨을 배우기 때문이다. 우리 대부분은 언제든 교체 가능한 부속품들 같아서 나 아니면 안 되는 조직 따위 없음을 익히 알아버린다.

 

그래서 최선을 다해 자신의 쓸모를 증명하는 데 우리의 전 생애를 바친다. 존재만으로 우리 인간은 축복받지 못한다. 효용적 가치 없이는 존재의 이유도 없다. 자본주의라서? 아니, 태초부터 그래왔다. 오히려 오늘날이 인권이니 생명존중이니 하며 인간을 수단이 아닌 목적으로 대하자고 주장하는 것이지, 우리나라만 해도 그런 얘기가 낯설지 않게 된 지 얼마 안 됐다. 어린이날이 왜 만들어졌는가, 어린이도 인간이란 인식에서 어린이를 인간으로 대하자고 만들어진 것인데...

 

그러니 시대, 지위, 배움에 상관없이 항상 소수만이 자신을 들여다볼 뿐이고, 그래서 그 소수는 대체로 사회와 친화력을 갖지 못한다. 소수는 그 유형의 희귀성으로 인해 언제나 다수에게 오해받기 마련이다. 그리고 그 소수만이 약자가 되더라도 악인이 되는 루틴, 그 판에 박힌 상습적인 과정에 빠지지 않는다. 단지 소수만이, 어쩌면 극소수만이.

 

따라서 다수의 인간은 약자이기에 언제든 악인이 될 수 있다. 권력이 없어서 갑질을 못 하고 돈이 없어서 자제할 뿐, 약자가 선량해서 법을 지키고 도덕을 준수하는 것이 아니다. 그 약자는 언제든 권력과 돈을 가지면 악인이 될 잠재력을 지니고 있다. 따라서 약자의 반대는 선인이다. 그리고 인간은 누구도 강자가 아니다. 우리 인간은 아무도 강하지 않다. 그저 악을 경계하는 소수와 악에 잠식당하는 다수의 약자가 있을 뿐이다.

 

그래서 죄는 미워하되 죄인은 미워하지 말란 말이 성립된다. 죄만큼 처벌받고 죗값을 치르는 사회기만 하면 얼마든지 우린 죄인을 미워하지 않을 수 있다. 그 악인은 악한 역할을 맡은 것이므로 악행만큼 대가를 치르기만 한다면, 굳이 그 사람 자체를 미워할 필요가 없는 것이다. 다만 우리 사회는, 우리만 그런 것도 아니지만, 그 죄의 대가를 정당하게 치르지 않기 때문에 죄를 저지른 사람을 미워하고, 그 사람은 영원히 악인이 되고 만다. 마치 원래 그렇게 태어난 것처럼, 그러나 원래 그렇게 태어난 사람이 얼마나 될까, 왜냐, 대부분의 인간은 그냥 그렇게 약자로 태어난 것이니까.


우리가 악인들과 비장하게 싸우지 못하는 이유는 그 나쁜 사람들이 너무 보통 사람이어서, 훌륭하지 못한 게 죄는 아니니까, 그리고 훌륭한 사람은 아주 적으니까, 내가 그 자리 그 위치였다 해도 나 역시 장담할 수 없으니까. 그래서 우리는 더더욱 죄를 정확하고 분명하게 처단해야 한다. 그것이 죄인을 구하는 유일한 방법이고 나를 죄에 빠지지 않게 하는 가장 확실한 길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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