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 산기도 하는 성자 이곳의 산은 새벽에도 고요하지 않다. 태양이 어둠을 채 밀어내기도 전에 여기저기 수런거리는 소리와 그 소리의 주인들이 남긴 발자국들로 어수선하다. 자라투스트라는 한국의 산이 맘에 들었다. 한국의 산은 비말 많은 수다쟁이가 하고 싶은 말을 꾹 참고 있는 것처럼 폭발 직전의 존.. 창작 동화♡시 2019.08.14
3. 도시의 부랑자들 허름한 옷을 입은 무리가 지하철역과 연결된 상가 로비 구석구석에 모여 삼삼오오 술판을 벌이고 있었다. 지나가는 사람들이 그들을 피해 돌아가는 모습이 보였다. 그들 중 한 무리에 다가간 자라투스트라가 물었다. “당신들은 집시입니까?” 그들은 아무 대꾸 없이 서로의 잔에 술을 .. 창작 동화♡시 2019.07.27
2. 교회의 파수꾼 교회는 조용하고 아무도 없는 듯 인적이 느껴지지 않았다. 자라투스트라는 정문에서 마주 보이는 가장 큰 건물의 현관문을 밀어보았다. 닫혀 있었다. 이 문 너머의 공간에 제대와 촛대와 성상이 있으리라, 너무 오랜만이라 그럴까, 자라투스트라는 느낄 수 있었다. 예배가 이루어지는 공.. 창작 동화♡시 2019.07.24
1. 한국에서 눈을 뜬 자라투스트라 정오에 눈을 뜬 자라투스트라는 동굴 밖으로 나와 주변을 살폈다. 여름 햇살이 눈을 찔렀다. 얼마나 잤던 건지 알 수 없었다. 영원회귀의 시간을 사는 그에게 시간이란 우물물처럼 고여 있는 것일 뿐 강물처럼 흐르는 것이 아니기에. 자라투스트라는 물기 없는 건조한 여름 햇살을 좋아한.. 창작 동화♡시 2019.07.18
차라투스트라, 한국에서 깨어나다 Ⅰ. 동굴에서 깨어난 차라투스트라 차라투스트라를 깨운 건 정오의 햇빛도 한낮의 바람도 아니었다. 그는 한 무리의 등산객들에 의해 잠에서 깨어났다. 그들은 산에 오르는 중이었고 옷차림이나 신발로 보아 모두 전문가들처럼 보였다. 그들의 왁자한 소리에 동굴 밖으로 나온 차라투스.. 창작 동화♡시 2018.10.02
바래다주기 오늘은 아무도 비난하지 말자 나 자신도 비난하지 말자 환영의 그림자가 무엇을 비난할 수 있을까 짓밟고 온 시간들을 잊어도 될까 가슴에 남겨두지 않아도 죄 되지 않을까 처음부터 그러려고 했던 건 아니다. 나를 끌고 온 건 내 탓이 아니라고 부인하고 부인해도 용서는 안 되겠지 상처.. 창작 동화♡시 2018.09.19
나는 그래 교환되지 않는 슬픔이 아래로 아래로 흘러서 고여 버리면 얼마나 더 살아야 어른이 되는 건지 견디고 싶지 않아져 시간은 아무것도 해결 못해 그래서 나는 거짓에 익숙해졌을까 이렇게 늙어버렸는데도 어른이 되지 않아 견딜 수 있을까 흔들리는 건 괜찮아 쓰러져 울어도 괜찮아 견딜 수.. 창작 동화♡시 2018.06.06
하루가 묵음으로 넘어갈 때 우리들의 대화는 모스부호 간극에 대한 해설은 절대금물 상상하지 말 것 경계와 경계를 없음은 있음의 부재가 아님을 의심도 말 것 직각은 상형문자의 유혹 45도 각도를 유지할 것 사선으로 사선으로 비행하지 말고 걸어서 끝까지 끝이 아닐 때까지 말없이 걸어갈 것 그렇게 걸어서 걸어.. 창작 동화♡시 2018.01.31
겨울비 한때 눈이 오겠습니다 예보가 무색하게 가만가만 비 내린다 빗소리로 한층 낮아진 마음 복판에 수로가 생기고 가엾어라 예정된 버려짐 버릴 줄 몰라서가 아니다 버려지도록 스스로 버려지도록 비 그쳐야 하늘 개이듯 나는 가난해도 좀더 가난해져도 안심하기로 다짐한다 창작 동화♡시 2018.01.30
달에 울다 오늘밤은 제가 좀 아파요 잠시 저 달로 걸어들어 갈게요 건조해서 부스러지기 쉬운 육신은 놔두고 비에 젖은 솜뭉치 마음만 건져 갈게요 그러니 오늘밤은 아무도 나를 불러내지 말아요 날선 기억에 베어버린 상처 따위 내버려 두고 머리맡의 붉은 베고니아 전설도 잊어버리고 자궁처럼 .. 창작 동화♡시 2018.01.2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