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통과 관계

초법과 불법 사이, 열혈사제에 열광하는 이유

아난존 2019. 4. 1. 09:23




법 앞에 만민이 평등하다는 말을 믿는 사람이 우리 사회에 과연 얼마나 될까? 대대로 우리의 권력자들에게 법은 통치의 수단일 뿐이며 그들은 자신이 법 위에 있다고 생각해 왔다. 그리고 그런 사고의 정치인들이 권력과 부를 오래 누려온 탓에 이게 관습이 되고 우리 사회의 질서가 되고 지배층의 표준이 돼 버렸다. 그런데 이제 와서 그걸 뒤집으려 하니까 세상이 왜 이 모양이냐 싶을 거다. 전두환에게 민간인 학살 정도는 기억에 남을 만큼 중요한 일도 아니며, 감옥에 있는 박근혜는 나쁜 사람들이 자신을 불결하게 만든다고 억울해서 울었다 하고, 이명박은 국고로 재벌이 되고자 하는 자신의 꿈을 방해하는 국민이 같잖고 짜증 난다. ? 내가 곧 법인데 하찮은 백성들이 감히 짐의 행보를 평가질하고 정죄하니까.

 

이런 전근대적인 왕정 시대를 사는 그들의 사전에 불법이란 없다, 오직 초법만 있을 뿐. 그런데 이런 특권의식은 전염이 잘 되나 보다. ‘버닝썬사태를 일으킨 승리가 어느새 초법에 익숙해졌듯이, 그들이 만든 신분제 사회는 수저 색깔론으로 불리며 젊은 세대들에게도 어쩔 수 없는 운명론으로 수용되었다. 그러니 반드시 꼰대나 노인층만의 문제가 아니다.

 

그러나 불법은 불법일 뿐이다. 불법을 초법으로 이해하는 그 사고, 그거 노예근성에 불과하다. 그런 노예근성을 무슨 대단한 통찰력인 양, 세상은 힘 있는 소수 몇 명이 움직이는 거야, 하고 말하는 소리를 나는 20대에 40대 꼰대에게 들었는데, 이 말을 다시 40대에 또 40대 꼰대에게 들었다. 그나마 과거의 꼰대는 나에게 자신의 정치인 인맥을 자랑하고 싶었던 거였지만, 후자의 꼰대는 자신의 무능을 감추는 동시에 타인에게도 무능을 강요하는 것이라 더 안타깝고 더 한심했다.

 

드라마 열혈사제가 왜 인기 있을까?

 

우선 이 드라마는 불법을 불법이라고 말하는 사람을 하나에서 둘로, 둘에서 셋으로, 셋에서 다섯으로, 이렇게 점점 더 늘려나감으로써 우리 인간이 사실은 그렇게 썩 나쁜 것들은 아냐, 하고 계몽적으로 속삭인다. 배우들의 월등한 비주얼과 코믹한 연기와 촘촘한 서사구조 속에서 일관되게 속삭이는 말, 인간이 그렇게 못돼 먹은 생명체는 아냐, 그래서 우리는 이 드라마를 보며 일면 안심하게 된다. 그래, 살다 보면 좋은 사람들을 만나게 되겠지.

 

그다음 등장인물들의 과거가 하나같이 범상치 않다. 국정원 비밀요원에 왕의 경호원에 비상하게 청력이 좋은 천문학 전공자에 천재 아역배우에 타짜까지... 일상에서 평범한 인물들이 필요한 때가 되면 적재적소에서 자신의 숨겨두었던 재능을 발휘해 독자들을 통쾌하게 만든다. 우리 평범한 사람들, 남들이 볼 때는 무능해 보이지만 사실은 비기 하나 정도는 품고 산다는 설정, 참 근사한 일이다. 범인을 영웅으로 만드는 그 자상함, 그 영웅이 일상에서는 다시 지질한 범인이 되는 그 섬세함이 감탄스럽다.

 

초법은 불법이 아니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은 지금 이 변화의 방향이 불안하고 두렵다. 그래서 총력을 다해 싸우는 것이다. 기득권과 기득권을 떠받치고 있는 카르텔과 그런 카르텔에 익숙한 꼰대 노예들이 대세 추수적인 대중의 심리를 먼저 제압하고자 기를 쓰고 있다. 그러니 어쩌랴, 우리 대중들이 이제 그만 대세 추수적인 심리에서 과감히 벗어나 스스로 생각하고 각자 판단하며 자신이 원하는 세상을 만드는 데 목소리를 내고 행동할밖에, 비록 민주주의가 썩 믿을만하지 못하다 해도 인류는 아직 그 이상의 길을 모르는데, 일단은 최고가 아니라도 최선을 택하는 것이 그나마 안전한 방법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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