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국노래자랑에 나와 손담비의 ‘미쳤어’를 요염한 춤과 탁월한 박자감으로 히트시킨 일명 할담비, 지병수 할아버지(77세)가 지상파 방송에서 손담비와 콜라보까지 하는 이변을 낳았다. 일반인이 가수와 콜라보라니, 대체 무슨 일이 벌어진 걸까?
우리 사회의 난제 중 하나인 세대 차이는 그냥 ‘차이’의 문제가 아니다. 차이에 대한 몰이해가 거부감을 부르고, 그런 거부감이 혐오로 이어진다는 게 진짜 문제다. 일제강점기 때 태어나 어린 시절에 한국전쟁을 거치고 오로지 생존을 위해 살아온 세대, 그래서 경제성장이면 독재자도 학살자도 용서가 되는 세대, 가난만 피할 수 있다면 뭐든 다할 수 있는 그 세대는 지금의 한국이 몹시 불편하고 서운하다.
부모에게 받은 것 없이 봉양의 의무를 다하고, 자신의 한을 풀어달라고 자식에게 올인했지만 자식 사대와 단절된 세대, 억울하고 서럽고 분노에 찬 세대, 그래서 일부는 태극기 부대를 지지하고, 일부는 폐지를 주우며, 일부는 지하철에서 젊은이들에게 시비를 건다. 그런다고 분이 다 풀리지도 않고 오히려 가족이나 사회에서 고립되지만, 상실감과 좌절감을 해소하는 방법을 배우지 못해 세상을 탓하고 자신을 몰라주는 젊은 세대가 마냥 괘씸하고 야속한 노인들.
그래서 할담비의 존재는 더욱 빛났다. 자신의 시간을 즐기는 모습에서 사람들은 그간 답답하고 안타깝지만, 불통의 공포를 이기지 못해 외면하고 마는 그 노인 세대에 대해, 평소 가지고 있었던 자신들의 고정관념을 시원하게 날려주어서, 그것이 한편 통쾌하고 한편 유쾌하다.
온몸으로 고생한 만큼 사고도 그만큼 경직된 사람들과 대화하고 교류하는 일은 참 고되다. 우리 사회의 세대 차이는 바로 그런 고됨으로 인해 전 세대에게 세대별로 특수한 시대적 분노가 있고, 그래서 내가 더 특수하게 힘든 것만 같다. 그래서겠지만 윗세대와도 아랫세대와도 도무지 소통이 되지 않는다. 세대별 공통점이 있다면 전 세대가 모두 세대 차이로 인한 극심한 고립감을 느낀다는 정도?
할담비에 환호하는 우리는 바로 그 지점, 세대별로 층층이 느끼는 그 격한 고립감을 무장 해제시켜준 지점에서, 불가능하게만 보였던 세대별 연대의 가능성에 훈훈해진다. 유쾌한 어르신 유튜버들의 인기 비결이 그렇듯 할담비는 우리에게 세대간의 견고한 벽을 부수는 것은 자신을 솔직하게 던질 때만이 가능하다는 것을 새삼 다시 일깨운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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