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통과 관계

관계, 그 아스라한 경지

아난존 2020. 10. 15. 03:24

 

인간관계가 우주개발보다 어렵다. 우주개발은 과학 기술의 발달만큼 더 많이 발전할 거란 기대가 있고, 그러다 외계인을 만나 우주어를 배워야 할 날이 온다 해도 그럴 수도 있겠다 싶다. 반면 인간관계는 태초 이래 지금까지 시기, 질투, 오해, 원망, 증오에 가끔 살인까지 근거리 관계일수록 틀어질 발생 빈도수가 높을 수밖에 없는 게 필연적 구조다.

 

알아야 싫어도 한다. 타자에 대한 싫음이 비록 자신의 이기심과 편협함에서 비롯됐다 해도, 아 그게 인간인걸 어쩔 것인가. 교육으로 교정 가능하다고? 그럴 리가, 인간 본성의 자연적 발화를 교육이라 생각했던 루소도 사교계의 인간관계서 쓴맛을 보고 좌절과 절망으로 울부짖었는데?

 

물론 만나는 사람 모두가 하나같이 나를 싫어하는 건 아니다. 다만 인간이란 게 가깝게 지내다 보면 그만큼 단점도 더 많이 드러내게 되고 그러다 보면 친근감의 깊이만큼 상대가 만만해진다. 여기서 선을 그으면 철벽 치는 인간이 되고, 선을 넘으면 끝내 감정 상하는 일들이 생긴다. 그런데 전자나 후자나 결과가 똑같다는 거, 이러나 저러나 상대는 한결같이 무시당하는 느낌을 받는다는 거, 이게 참 놀라운 일이다.

 

알아야 비교도 한다. 사촌이 땅을 사면 배가 아프다고? 배 아파하면 그 땅이 내 거라도 되나? 어차피 내 게 될 것도 아닌데 뭐하러? 아마도 그 사촌이 교류가 없는 관계라면 상관없을 것이다. 문제는 가까운 관계여서 자꾸 자신이랑 비교한다는 거다. 대체 왜 우리는 시도 때도 없이 남과 비교하면서 자신을 타자화하는 걸까, 나는 난데 왜 내가 너여야 하는 걸까.

 

아벨처럼 눈치 없는 놈은 카인에게 살해당한다. 카인의 비교의식이 동생을 죽일 만큼 강렬했다면 그 원인은 둘 중 하나거나 둘 다이다. 선천이거나 후천이거나 둘 다이거나. 선천이면 인간의 종특인 거고 후천이면 부모의 잘못된 양육방식인 거고. 사회가 아무리 경쟁을 부추겨도 부모가 중심을 잡아주면 되겠지만, 인간이란 생명체는 나이 든다고 저절로 철들지도, 자녀를 키운다고 저절로 성숙해지지도 않는다. 세상에 공짜란 없다. ‘저절로따위 인간에게 주어진 옵션이 아니다.

 

그래서 혼자가 편하다는 사람들이 늘고 있다. 그럼에도 인간이 사회적 동물이란 명제가 사라지진 않을 것이다. 인간은 그만큼 강하지 않기 때문이다. 딜레마, 타인에게 사랑받고 의지하고 싶은데 상대 역시 나랑 똑같다는 거, 내게 사랑받고 의지하고 싶다는 거, 그래서 가까운 관계일수록 그 기대만큼 사랑은 증오로 치환되기 쉽다.

 

서로 상대에게만 무조건적인 사랑을 요구하는 거 자체가 조건부 사랑인데, 그걸 인정하지 않거나 인정할 수 없으니 인간관계는 나아질 방법이 없다. 세상에 공짜가 없다는 걸 뻔히 아는 사람도 유독 인간관계에선 같은 실수를 반복하거나 무리한 설계를 시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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