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랜만이다, 니 부모 얼굴이 보고 싶다 같은 영화가. 외면하고 싶고 덮어놓고 싶은 진실을 굳이 꺼내 보여주며, 전신거울 필요 없다고, 손거울만 있으면 된다는 대중을 굳이굳이 전신거울 앞에 세워놓는 영화, 그래서 끈적하고 기분 나쁜 일상의 공포물. 인정하자니 내 얼굴에 침 뱉기, 부인하자니 내 정신에 흙탕물 붓기, 어정쩡 타협하자니 내 영혼을 건조기에 말리는 느낌? 그렇잖아도 외모도 오징어인데 내면마저 반건조 오징어가 되게 만드는 영화.
관객은 영화를 보는 그 잠깐만이라도 현실에서 벗어나고 싶다. 그래서 범죄도시2가 흥행에 성공하는 거 아닌가. 선악구도 확실한 상황에서 정의의 슈퍼맨이 통쾌하게 악인을 작살내주는 서사는 어쨌든 대리만족감을 준다. 사람을 생선처럼 다루고 화면 전체가 피칠갑이 되도, 이 모든 역한 과정이 마지막 한 방인 대망의 정의 실현을 위해서라면 그 과정이 잔인할수록 끝은 더욱 통쾌하다.
그런데 이런 현실에서, 야 너네 보통사람들아, 피해자 코스프레 좀 작작해, 네 자식이 범죄자고 네가 그런 범죄자 자식을 키운 부모야, 널 닮아서 네 자식이 그런 거고 네가 그렇게 만들고 방관하고 협조한 거야, 그러니 너 자신을 돌아보는 게 어때? 이렇게 약해서 악하고, 악해서 역겹고, 역겨워서 아픈 곳을 꾹꾹 찔러대는 영화, 니 부모 얼굴이 보고 싶다, 왜냐고? 자식 얼굴 속에 부모 얼굴 있으니까. 저 자식이 왜 저 모양 저 꼴인지는 부모를 보면 답 나오니까.
범죄도시2나 니 부모 얼굴이 보고 싶다나 과도한 폭력성과 넘치는 잔인함이 시종일관 흥건하고 요소마다 비루한 군상들의 비열함에 질척댄다. 다만 범죄도시2에 나오는 군상들은 특정 영역에 집단적으로 서식하고, 그런 위험한 놈들을 혼내주는 영웅이 존재하기에 보통사람들의 일상은 안전하다. 반면 니 부모 얼굴이 보고 싶다에 나오는 인물들은 우리의 일상 전 영역에 걸쳐 구석구석 존재하기에 어느 순간 그 얼굴이 내 얼굴이 될 수도 있다. 그래서 후자가 훨씬 더 소름끼치고 공포스럽다.
니 부모 얼굴이 보고 싶다의 한결이가 학폭 피해자에서 가해자가 되는 지점, 그 지점에서 악인과 내가 분리되지 않고 내 안에서 혼종됐음을 느끼는 순간 불편함과 불쾌함은 극에 달한다. 그래서 한결이는 그 사실을 인지시키는 친구의 목을 눌러버린다. 오 마이 갓! 피해자가 가해자로 진화되는 현장을 목격하는 것은 참 괴롭고 잔혹한 일이다.
일상이 돼버린 갑질과 을질의 뫼비우스 띠를 당연하게 수용하고 있는 작금의 우리가 한결이처럼 망가지지 않으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한결이의 아버지처럼 변호사씩이나 되면서 처절하게 비루한 삶을 살지 않으려면? 이런 문제들을 덮지 않고 똑바로 주시하며 견뎌내게 될 때, 그때쯤 되면 그래도 우리 사회가 성숙해졌다는 신호로 봐도 좋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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