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과 영화와 웹툰

영화 듄, 그립고 아쉬운 대항해시대 그리고 중세

아난존 2021. 11. 1. 02:51

 

영화 듄의 평가는 극단적이다. 호불호가 확실히 갈리는 영화인데, 나는 어느 쪽이냐면 극호 쪽이다. 왜냐, 시간적 배경이 엄청 미래인 10191년이지만 그냥 대놓고 중세인 것도 좋고, 주인공이 전형적인 사기캐에 지능형 사색남인 것도 좋고, 서양의 제국주의를 티나게 뽀샵한 것도 좋다. 백인에게 대항해시대는 얼마나 달콤하고 우월한 기억인지 숨기지 않아서 좋다.

 

종교적 고뇌는 티나는 뽀샵질 중 하나일 뿐이다. 원저자인 프랭크 허버트가 초인(슈퍼히어로)은 인류에게 재앙이다.”라는 인터뷰로 반메시아 사상을 전했다고 하는데, 그게 진심이라면 중세적 질서로 장엄함을 배치하고 주인공 폴에게 메시아적 이미지를 몰빵했을까?

 

폴은 공작인 아버지의 피와 황제의 막후 세력이며 신비한 힘을 가진 종교집단인 베네 게세리트인 어머니의 피를 이어받았다. 그냥 귀족 아니고 황제의 권위를 위협하는 우주 최고의 덕망 가문 아트레이데스가 부계고, 그냥 베네 게세리트 아니고 메시아를 낳을 혈통으로 지명된 제시카가 모계다. 그러니 폴은 비범하기로 태생부터 예정된 인물. 그래서 군살 1g도 없는 본론만 있는 몸매에 창백한 얼굴, 깊고 우수에 찬 눈빛을 가지고 있다. 탐욕스럽고 교활한 하코넨 가문의 남작이 비대한 몸집인 것과 대조를 이룬다. 먹을 걸 탐하고 날렵하게 움직이지 못하는 몸은 저급하고 천박한 세속적 욕망의 상징이다.

 

거기다 중세적 질서를 그대로 가져왔다. 황제의 절대 권위와 막강한 군대, 미지의 종교단체와 신비한 힘, 그리고 단순 간결한 세계관. 진정성 없고 비현실적인 대의명분 대신 황제는 질투심 많고 위험한 사람이야.” 이 한 줄이 대서사의 유일한 발단이다. 거대한 규모의 우주전쟁이 한낱 시기심 많고 의심 많은 황제의 계략으로 시작된다. 마침 정적인 하코넨 가문은 옳다구나! 하고 황제의 계략에 올라탄 거고. 억울하고 위험한 거 알아도 황제의 명령에 저항 없이 복종하는 레토 아트레이드 공작의 비장미는 중세적 질서라야 설득력이 있다. 가문의 존망이 걸린 일인데도 정치력을 발휘하지 못한 채 죽는다. 그의 이런 우직함이 아들 폴의 운명을 확정 짓는 또 다른 조건이다. 그야말로 폴은 아버지의 원수도 갚아야 하고 아트레이데스 가문도 지켜야 하는, 선택권 없는 필연적 상황에 놓인다.

 

이제 2편에선 우주의 구원자로 낙점된 폴이 전쟁을 싫어하면서도 위대한 전사로 거듭나고, 메시아의 운명을 괴로워하면서도 그 운명에 순응해 베네 게세리트와 애증의 관계를 맺게 될 것이다. 내 운명을 왜 니들이 마음대로 정하니? 그치만 내 손에 우주의 운명이 달렸다면 이 또한 어쩔? 그러면서 비장미와 숭고미를 챙겨갈 것이다. 그러라고 외모와 내면 모두 섬세한 캐릭터인 티모시 샬라메가 주인공을 맡았겠지. 사막의 황량함과 프레멘 전사들의 비범함은 이국적 재미를 더하는 덤이고. 극한 상황을 극복하며 살아내는 생명체에게 인간은 선악과 시비를 넘어 경외감을 느끼기 마련이니까.

 

정리하면, 영화 듄은 메시아로 점지된 인물이 반메시아적 사상을 전달하는 영화라기보단 유럽인들이 자랑스러워하는 대항해시대의 추억을 조미료 삼아 인류의 영원한 난제인 전쟁을 재료로 요리한 판타지다. 종교적 외피는 판타지 요리를 담은 그릇인데, 그릇의 재질을 고급화하는 데 중세가 동원된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