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과 영화와 웹툰 22

웹툰 닥터 하운드, 인간에 대한 지겨움과 견딤

스릴러 장르에 등장하는 인물들은 반전의 반전을 위해서라도 평면적이면 안 된다. 상황 뒤집기를 연달아 해줘야 하는 특성상 이상 성격을 가진 인물들이 등장하기 마련이다. 좋은 놈 나쁜 놈이 뚜렷하고 세계관이 예측 가능하면 재미가 반감된다. 네이버 웹툰의 닥터 하운드는 그런 점에서 재미있다. 전형적인 인물이 없다. 주인공인 하운드는 표정이나 말투가 냉소적이라 종종 사악하게 느껴질 때가 있다. 그래서 주인공도 반전이 있나 싶지만 “지금도 사람은 싫어, 다만 보호하고 싶은 사람들이 생겼을 뿐이야.”로 자신의 입장을 굳힌다. 사람에 대한 이런 세계관, 사람은 믿을 만한 존재가 아니란 관점, 특히 열등감으로 인한 왜곡된 감정들에 대해 이 웹툰은 적나라하게 파헤친다. 애초에 괴물 아르고스에게 침식당하는 원인이 감정의 ..

페미니즘, 자본주의, 뮬란의 판타지

영화 뮬란은 유역비 발언과 엔딩 크레딧의 논란 속에서 보이콧 때문인지 흥행이 예상치에 못 미치고 있다. 영화는 그냥 딱 디즈니 영화다. 이미 성공한 애니메이션의 실사판인 만큼 기대만큼의 액션과 규모를 넉넉한 자본의 미덕으로 보여주는 딱 그 정도? 영화비와 시간이 아깝지 않을 정도의 재미만 장착하면 디즈니의 역할은 다한 거니까. 그런데 페미니즘을 판타지로 치환시킨 탓에 영화가 약간 기괴해졌다. 공리가 소화한 시아니앙 역은 압도적인 능력으로 눈길을 끈다. 다만 관객은 비중 높은 그 캐릭터를 이름 대신 마녀로 기억한다. 영화에서 그녀는 시종일관 마녀라고 불리는데, 그 낯설고 특별한 힘이 범인들에겐 공포로 인한 혐오를 초래하기 때문이다. 여기서 영화 뮬란은 각기 다른 서사를 한 그릇에 담는 다소 저렴한 뷔페 음..

영화 부산행과 예수의 죽음

코로나19가 아니더라도 재난 영화는 대체로 인기가 좋다. 장르 특성상 제작비가 웬만해야 촬영이 가능하고, 웬만한 제작비는 웬만한 배우들을 등장시킬 수 있기에, 재난 영화는 두루두루 기본은 한다. 클리셰 어쩌구 해도 불특정 다수에게 들이닥치는 예기치 못한 순간의 스릴과 공포가 재난 영화를 보는 짜릿함이다. 방화 특유의 신파만 피해 간다면 억지스러운 휴머니즘 때문에 괴로울 일도 없다. 영화 부산행을 보면서 오로지 바란 건 하나, 영화 감기처럼 시대를 과거로 되돌린 것 같은 기이한 신파만 아니면 된다는 거, 재난 영화는 그거 하나만 충족하면 기본은 하게 돼 있으니까. 그런데 부산행은 나의 트라우마를 확 건드리며 나를 너무 슬프게 했다. 보통 사람들의 본능적인 이기심과 그런 이기심을 이용할 줄 아는 나쁜 놈과 ..

설국열차가 기생충으로 진화한 이유

설국열차의 결말은 평면적이고 계몽적이다. 열차 속 계급 구성이 그렇고, 칸마다 펼쳐지는 등장인물들이 그렇고, 그러니 당연하게도 굳이 기차를 그렇게 폭력적으로 세워야 했다. 희생 없이 혁명 없으니까, 자유에는 피 냄새가 난다던 어느 시인의 문장이 여전히 감동적인 세상이니까, 다만 지금은 인류가 많이 지친 상태라는 거, 그래서 결연하게 기존 체제를 폭발시켜봐야 다시 설국열차의 세계가 마치 인류사에 생판 처음이었다는 듯 그렇게 똑같이 순환될 것이란 의심이 든다 해도, 달리는 기차 안에서 되도록 적은 희생으로 계급차별을 없앨 수는 없었는지, 아니면 그냥 기차를 얌전히 세워서 남은 결정을 생존자들 각 개인에게 넘기면 안 되는 거였는지, 다른 결말에 대한 사념 없이, 미래의 희망으로 상징되는 아이 둘의 생존을 그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