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과 영화와 웹툰

마녀를 심판하는 망치

아난존 2018. 4. 19. 04:23




"마녀를 심판하는 망치"(야콥 슈프랭거/하인리히 크라머, 이재필 역, 써네스트, 2016)는 15세기의 인식력과 과학 수준을 감안한다고 해도 마녀라는 대상에 대한 적의가 노골적으로 느껴지는, 그러면서도 마치 객관성을 기준으로 검증받은 사실인 양 기술된, 그래서 의도적으로 의뭉스럽게 날조된 악질적인 저서이다. 왜 그런 생각이 드는 걸까?


그것은 이 이야기가 과거로 끝난 유물 같은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래서 오늘날의 우리가 봐도, 대명천지라고 할 만한 21세기를 살면서도 이 논리가 낯설지 않아서 절망적이다. 우리 사회만 해도 빨갱이, 종북좌빨 같은 마녀와 동일한 작동방식을 가진 용어들이 있다. 그리고 사회 구석구석에 왕따 현상이 있고, 지역별, 성별 비하 용어들이 인종주의 자리를 대신하고 있다. 여기에 더해 갑질 사건과 여성혐오 사건이 최근 급증하는 중이다. 왜일까?


무엇이 사람들을 이렇게 극단적으로 몰아대고 있는가? 이것을 기득권 세력의 지배력 강화 및 유지를 위한 정책에 의한 것이라고, 고전적으로 일관되게 논의를 끝낼 수 있을까? 그러기엔 오늘날의 대중들은 지나치게 많은 정보에 노출되어 있다. 정보 생산의 독점과 정보 유통의 통제가 과거처럼 일사불란할 수 없는 현실에서도 일베, 어버이연합, 엄마부대 등등이 존재할 수 있다는 게, 존재는 할 수 있어도 그 세력이 10%를 넘는다는 게 무서운 일이다. ?


혐오나 증오도 생존의 동력이 되기 때문일까? 약육강식에 순종할 수 없는 인간만의 반자연적인 기질이 약자를 짓밟는 것으로 자신의 정체를 확인하게 되는 걸까? 슬라보예 지젝은 내가 손해를 보더라도 남이 이익을 보는 건 참지 못하는 질투심이 평등주의를 주장하게 만든다고 했는데, 그래서 이기주의보다 나쁜 게 질투심이라고 했는데.....


태극기집회의 분노탱천한 결기 속에는 왕후장상의 씨가 따로 있음을 인정하라는 행간의 외침이 숨어 있다. 왕후장상의 씨가 아닌 것들이 왕후장상 앞에서 주눅 들지 않고 사는 꼴은 차마 눈뜨고 볼 수가 없다는, 이런 심리가 우리 개개인의 혈관에 피처럼 흐르고 있지는 않은가 생각해 볼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