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과 영화와 웹툰

알랭 드 보통의 "무신론자를 위한 종교"

아난존 2018. 4. 16. 00:47




알랭 드 보통의무신론자를 위한 종교(청미래, 2011)의 요지는 신을 믿지 않아도 좋다. 그러나 그간 종교가 문화, 예술, 윤리 등에서 이룩한 업적을 외면하는 것은 서구문명을 통째로 거부하는 행위다. 굳이 그럴 필요가 있을까, 종교의 외피는 버리되 그로 인해 발전한 사상, 정신세계 등은 우리 인류의 자산으로 인정하고 수용해야 한다.”라는 것이다.


그런데 만약 우리 인간이 그 정도로 성숙하다면 이미 종교는 필요 없지 않을까 하는 의심이 든다. 우리나라는 물론 세계 곳곳에서 종교를 방패삼아 인간의 탐욕을 정당화시키는 일들을 보고 있노라면, 인간은 구제불능처럼 느껴지고 종교는 인간들의 부끄러운 행동을 합리화시켜 주는 사악한 도구처럼 생각된다. 그러나 달리 생각해 보면, 그나마 종교가 있어서 인간들이 부끄러워하는 게 아닐까,


물론 합리화는 비겁한 위선이지만 그마저도 하지 않는 세상이란 더 끔찍하지 않을지, 정당화는 가증한 포장이지만 그래도 그게 동물과는 다른 인간의 양심 때문은 아닐지, 종교가 악용되는 현실이 안타깝지만 그래도 그게 최후의 보루가 아닐까 생각한다면 지나친 아전인수인가. 다시 말해, 종교 때문에 싸우는 것이 아니라 원래 싸울 거였는데 그나마 종교 덕분에 명분이라도 내세우고 있다는 것이다. 흔히 말하기를, 인간이 다른 어떤 짐승보다도 잔인하다고 한다.


그러나 과연 그럴까? 적어도 짐승은 자기 배고플 때만 살생한다고, 인간처럼 생존에 꼭 필요한 것도 아닌, 부의 축적과 권력의 남용 때문에 다른 존재를 죽이지는 않는다고, 그런데 이런 종류의 비판, 즉 인간을 동물에 포함시켜서 여타의 짐승들과 비교하는 일반론적인 비판에 문제는 없는 걸까? ‘생존이면 모든 게 용서되는 상황은 자연과학의 발달과 맞물려 있다. 특히 생물학과 의학 분야에서는 생명 보존과 연장이 우리 인간 삶의 최대 목표요, 인생의 궁극적인 지향점처럼 주장하는데, 이 범주에 모든 종류의 인간들이 해당되는 것은 아니다.


더욱이 그 연장선에서 영생교리를 위치시킨다면, 그런 종교야말로 동물적 본능에 너무 충실한 게 아닐까? 동물이 나쁘다거나 하등하다는 게 아니다. 실제로 동물과 인간은 다르다는 거다. 사슴을 사냥하는 사자의 진지함이 때론 감동적이기도 하지만, 그것이 결코 인간적인 것은 아니다. 인간에게 동물적 본성이 95% 이상이라 한들, 그것이 곧 인간이 동물이며, 고로 짐승이란 증거가 되지는 않는다. 그런데 지금 우리는 그런 동물적 본성을 너무 많이 인정하고 있지는 않은지, 약자에게 가혹한 사회에 사는 사람으로서 과연 이게 괜찮은지 두려울 때가 있다.


그러므로 알랭 드 보통은 무신론자라고 보기 어렵다. 그보다는 무신론자를 지성인으로 여기는 사회에서 그들의 언어로 종교와 신을 얘기했다고 하겠다. 그래야 무신론자들이 알아들으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