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 베슈텔의『신의 네 여자』(전혜정 역, 여성신문사, 2004)는 인류의 슬픈 상처이고 잔인한 흉터이다. 종교가 여성을 핍박하고 억압해서가 아니라 왜 인간은 약자를 혐오하지 않고는 살아가지 못하는지, 이런 가학적인 메커니즘에서 언제쯤 벗어날 수 있는 것인지, 우리 안에 있는 악의 씨앗은 사회구조가 개선되면 진짜 휘발되기는 하는 것인지, 아무래도 출구가 없어 보이기 때문이다.
인간 사회는, 적어도 역사시대 이후의 기록만으로 보면 날마다 지옥의 연속이었다. 성서만 해도 그렇다. 창세기부터 묵시록까지 일관되게 아비규환의 기록이다. 성서를 꾹꾹 눌러 짜서 한 마디만 남긴다면, 그건 고통의 비명소리일 것이다. 하다못해 새 하늘 새 땅이 건설되는 소망의 세계가 도래할 때도 악당들의 비명소리를 먼저 들어야 한다. 그런데 악당들도 인간이란 불편한 진실은 어쩌란 말인가.
저자의 지적처럼 기독교가 특별히 더 여자를 학대한 것이 아니다. 다른 종교들도 여자를 열등한 존재로 다루었다. 물론 저자는 기독교가 정신적인 면에서 더 교묘하게 억압했다고 하는데, 이런 비교는 설득력이 없다. 사람이 물리적인 고통과 신체적인 학대를 당하면서 인성을 지키는 게 과연 가능한 일인가, 무엇보다 신체적 학대를 당하지 않는 것이 인권의 기본일 것이다. 그런 점에서 기독교는 최악의 종교는 아니다.
여기서 다시 처음의 문제의식으로 돌아가 보자. 여성은 과연 종교 때문에 남성에 비해 불리한 삶을 살게 된 것인가? 글쎄, 그렇다고 보기 어렵다. 사자는 종교가 없어서 토끼를 잡아먹을까, 사자에게 종교가 있다면 토끼 대신 당근만 먹을까, 그보다는 토끼를 먹고 제사를 지내주지 않을까. 종교는 그런 것이 아닐까, 어차피 먹을 토끼 앞에서 살짝 미안한 마음이 들도록 하는 것, 그래서 덜 아프게 죽인 후 먹고 나서 안식을 빌어주는 것, 종교는 그런 역할로 유지되고 있는 것은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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