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과 영화와 웹툰

은하철도 999의 종교성

아난존 2019. 1. 13. 17:52





철이가 너무 작아서 메텔과 사귀기엔 어울리지 않아, 이게 내가 어린 시절 즐겨 봤던 '은하철도 999'에 대한 인상평이었다. 이 만화가 어마어마하게 심오하고 가슴 아릴 정도로 종교적이란 걸 알게 된 건 어른이 되고서도 시간이 마구마구 흐르고 난 먼 후일, 그러고도 삶의 온갖 부침을 겪고 나서다.

 

이 만화는 1977년 일본 소년 만화 잡지 소년 킹에 처음 등장해 2년간 연재됐고, 애니메이션은 후지 TV를 통해 1978년부터 26개월간 모두 113화가 방영되었으며, 극장판은 1979년과 1981년에 제작, 상영되었다고 한다. 우리나라에서는 1981년에 특선만화로 1, 2화가 최초 방영되었다가 반응이 좋아 1982년부터 1983년까지 문화방송에서 전편을 일요일 아침 8시에 2편씩 60분으로 묶어 정규 방영했다고 하니,

 

굉장하다! 그러니까 이 만화는 잡지 연재 도중 TV 애니메이션으로 제작되었고, TV 프로가 종영되기도 전에 극장판이 걸렸다는 것이다. 그만큼 인기 있었다는 얘기니, 이 만화의 주제적 난해성에도 불구하고 대중성을 획득한 작가 마쓰모토 레이지(본명은 아키라)의 상상력에 거듭 감탄할 뿐이다.

 

작품 배경인 서기 2221년은 아직도 202년이나 남았지만, 그 상상의 세계가 현실이 될지도 모른다는 생각과 동시에 더욱 놀라운 건 최초 창작 시기가 지금부터 42년 전이라는 것이다. 그때 이미 일본인 마쓰모토는 지구의 우주열차가 은하계 끝까지 왕래하고 혹성 간 왕복운행이 활발히 이루어질 거라고 상상했는데, 여기서 핵심은 우주의 부자들이 '기계의 몸체'로 전환하면 영원한 생명을 누린다는 설정이다. 그러니까 기계의 몸은 부자와 선택받은 사람들인 거고, 자연의 몸은 빈자와 소외된 사람들인 것이다.

 

장기 이식 기술이 발전하고 있는 요즘 돈과 생명은 점점 직결되는 문제이다. 이제 인명은 재천이란 믿음 따위 고리짝 옛말이 될 판이다. 그럼에도 갑작스러운 사고에는 장사가 없는지라 그런대로 이런 믿음을 유지해 왔으나, 인간의 유약한 몸이 아예 기계로 대체된다면 그땐 얘기가 달라진다. '은하철도 999'에서 기계 몸이 아닌 보통 사람들은 도시의 버려진 곳에서 당장 내일을 알 수 없는 벌레처럼 살아간다.

 

여기서 우린 인간의 존엄성이란 게 뭔지, 다시 생각해 보게 된다. 우리 모두 언제 죽을지 모르는 존재라서 생명이 존귀하고, 그 유한성 때문에 현재에 최선을 다하는 삶이 아름답다는 고정관념, 그것이 과학기술의 발전과 함께 하찮게 된다면, 우리 모두는 신이 되는 동시에 인간은 더 이상 존엄한 존재가 아니라는 아이러니에 빠진다. 연약한 생명이 가진 유한성에서 벗어나 드디어 신처럼 영생하게 되는 순간 인간은 기계처럼 부품으로 전락하는 것이다.

 

가치가 사라진 시대에 남는 건 기능적 역할뿐이니, 인간성이란 게 뭔지 문제 삼기도 민망하다. 인간의 유한성이 해결되면 신은 저절로 인간과 결합상품이 되어 1+1 행사상품 정도의 무게를 갖게 될 것이고, 당연히 그렇게 되면 신은 이제 인간에게 고민거리도 되지 못한다. ‘안녕이 우리 인간에게 최선의 지향점이라면 이보다 더 안녕한 세상도 없다.

 

그런데 왜 철이와 메텔은 그런 세상을 거부했을까, 왜 인간은 기계의 부품이 되어서는 안 되는 걸까, 네오가 안락한 매트릭스의 세계를 거부하고 잔인한 현실인 시온으로 나온 것처럼, 여전히 인간이란 존재는 개별 자아와 실존적 고뇌가 특징이라고 믿고 싶기 때문일까?

 

그런데 진짜 은하철도 999의 세계가 온다면, 서기 2221년쯤 된다면, 아니 어쩌면 그렇게 멀리 가기도 전에, 그때도 우리 인간들이 여전히 철이처럼 생각하고 메텔같은 기득권자의 조력을 받을 수 있을까, 그때도 우리 인간들에게 네오가 영웅일까, 글쎄, 난 왜 아닐 것이란 생각이 드는 것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