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릴러 장르에 등장하는 인물들은 반전의 반전을 위해서라도 평면적이면 안 된다. 상황 뒤집기를 연달아 해줘야 하는 특성상 이상 성격을 가진 인물들이 등장하기 마련이다. 좋은 놈 나쁜 놈이 뚜렷하고 세계관이 예측 가능하면 재미가 반감된다.
네이버 웹툰의 닥터 하운드는 그런 점에서 재미있다. 전형적인 인물이 없다. 주인공인 하운드는 표정이나 말투가 냉소적이라 종종 사악하게 느껴질 때가 있다. 그래서 주인공도 반전이 있나 싶지만 “지금도 사람은 싫어, 다만 보호하고 싶은 사람들이 생겼을 뿐이야.”로 자신의 입장을 굳힌다.
사람에 대한 이런 세계관, 사람은 믿을 만한 존재가 아니란 관점, 특히 열등감으로 인한 왜곡된 감정들에 대해 이 웹툰은 적나라하게 파헤친다. 애초에 괴물 아르고스에게 침식당하는 원인이 감정의 증폭에 있는 거니까 마음의 평정을 잃은 사람들은 모두 아르고스의 타깃으로 적합하다. 그래서 아르고스가 살짝만 부추겨도 자살이나 살인에 이르게 된다.
그러니까 이 웹툰은 인간에 대한 지겨움과 그래도 견뎌야 함을 스릴러 형태를 빌려 표현한 것이다. 곽진웅 경찰처럼 일관되게 이타적인 사람도 있지만 그래서인지 주요 인물 중 유일하게 그만 죽는다. 곽진웅 에피소드는 특히 소중하게 다뤄지는 만큼 총 15개의 에피 중 3개의 에피가 친구 최대철을 구하기 위한 그의 죽음 과정을 보여주는 전개다.
곽진웅은 아르고스에 잠식된 최대철을 구하고 대신 죽는다. 절친의 목숨을 살렸으니 그의 계획은 나름 성공한 셈이다. 그럼 최대철이 누구길래? 최대철은 보통 사람 중 선량한 인물이다. 적당히 양심적이고 적당히 호기심 많고 적당히 약자도 돕는 너무너무 보통 사람이지만 이 범주 안에서는 매우 선량한 사람.
최대철의 대사 중 “넌 어렸을 때부터 뭐든 남들보다 좀 더 뛰어났었어. 난 그걸 늘 자랑스러워했지만 그게 전부는 아니었나 봐... 시기, 질투...? 누구나 느낄만한 그 정도였는데... 그 감정에 물어뜯겨서 지금 이 꼴이야.” 이렇게 자신을 돌아보는 장면이 나온다. 보통의 인간이기 때문에 약점도 있지만 그런 인간이기 때문에 반성도 하는 최대철은 그래서 구원받는다.
친구를 구하기 위해 독자까지 속여먹은 영웅 곽진웅은 우리가 현실에서 볼 수 있는 인간 유형이 아니다. 그의 한결같음과 우직함은 인간의 속성이 아닌, 그러나 인간들에게 지친 사람이라면 그려봄 직한 이상적인 우상의 모습이다. 그런 사람이 세상에 하나쯤 있었으면 하는, 그러나 세상 사람들 속에 살아 남아서 함께 서 있긴 낯설었던 것일까. 곽진웅의 묘는 산 사람들을 이어주는 매개 역할을 한다.
그래서 이 웹툰은 아르고스란 괴물을 만든 닥터의 비중이 아주 작다. 그는 인간의 감정을 들여다보게 만드는 계기만 제공했을 뿐이다. 그러니까 이 웹툰은 인간의 감정, 그것도 소모적이고 불필요하고 쓸데없는 감정들, 바로 그런 것 따위에 휩쓸려 극악무도한 짓을 할 수 있는 존재가 인간이란 그 사실이 스릴러라고 말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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