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뮬란은 유역비 발언과 엔딩 크레딧의 논란 속에서 보이콧 때문인지 흥행이 예상치에 못 미치고 있다. 영화는 그냥 딱 디즈니 영화다. 이미 성공한 애니메이션의 실사판인 만큼 기대만큼의 액션과 규모를 넉넉한 자본의 미덕으로 보여주는 딱 그 정도? 영화비와 시간이 아깝지 않을 정도의 재미만 장착하면 디즈니의 역할은 다한 거니까.
그런데 페미니즘을 판타지로 치환시킨 탓에 영화가 약간 기괴해졌다. 공리가 소화한 시아니앙 역은 압도적인 능력으로 눈길을 끈다. 다만 관객은 비중 높은 그 캐릭터를 이름 대신 마녀로 기억한다. 영화에서 그녀는 시종일관 마녀라고 불리는데, 그 낯설고 특별한 힘이 범인들에겐 공포로 인한 혐오를 초래하기 때문이다.
여기서 영화 뮬란은 각기 다른 서사를 한 그릇에 담는 다소 저렴한 뷔페 음식이 되어버린다. 자본주의는 모든 것을 자본의 논리로 설명할 수 있다는 그 대단한 자부심, 그래서 유역비가 홍콩 경찰 지지 발언을 해도, 엔딩 크레딧의 공안 협조 감사 운운이 소수민족 인권문제에 둔감하다는 반발이 있어도, 가장 중요한 중국 시장에는 별 문제가 없다고 판단했을 것이다.
그런데 자본의 논리는 뭐든 먹어 치우는 괴물 같아서, 그리고 그 괴물은 먹어도 먹어도 허기가 져서 그랬을까? 뮬란의 아버지 역이 시진핑과 얼굴이 똑같다는 논란마저 불거졌다. 문제는 닮아도 너무 많이 닮았다는 데 있다. 이런 논란을 예상해서라도 제작 과정에서 피해야 할 결정이 아니었나 싶은데, 이게 제작진의 진짜 숨은 의도였다면 여전히 중국인을 비롯한 아시아인들에 대한 이해도가 한참은 낮다고밖에 할 말이 없다.
그리고 그 마냥 허기진 자본의 논리는 2020년 인기상품으로 페미니즘을 간택했다. 가부장제 사회에서 여성의 공적 지위를 인정하지 않는 불합리함, 이런 부당함에 저항하는 두 여성 간의 연대. 시아니앙은 마녀로 폄하되는 자신의 처지를 비관하다가 이제 막 조직에서 인정받기 시작한 뮬란에게 새로운 희망을 보며 그녀를 살리기 위해 대신 죽는다.
적군이란 대립적 위치도, 승전 후의 약속도 한낱 부질없게 만들 정도의 뜨거운 여성연대, 이 정도면 퓨전요리치고도 대단히 실험적인 맛에 도전한 것이다. 겉은 바삭한 충(忠), 용(勇), 진(眞)에 이어 효(孝)의 맛까지 보장하면서, 속은 촉촉한 여성이란 태생적 기반 위에 세워진 동지적 우애를 페미니즘의 맛으로 내려 했다.
자본의 논리가 무리하게 시도한 이 겉바속촉의 실험적인 맛은 디즈니의 판타지가 보여줄 수 있는 세계관의 한계를 궁색하게 드러냈다. 이렇게 디즈니가 풍미한 한 시대가 종말을 고하나 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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