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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대통령의 7시간’, 종교와 정치의 관계

아난존 2019. 12. 25. 23:01




종교는 왜 정치 권력을 탐할까? 뉴스에 나오는 종교인 기사는 태반이 속물스럽다 못해 추하고 천하다. 왜일까? 그게 종교의 속성일까? 그럴 리가, 그러나 종교가 정치에 이용당하기 매우 쉬운 것만은 분명 사실이다.

 

영화 대통령의 7시간은 박근혜가 최태민에게 이용당했고, 그가 현몽과 최면술로 사람들을 조종했다고 말한다. 이름도 수시로 바꾸고 직업도 여러 개로 알려진 최태민, 그는 박정희와의 인연으로 박정권 시절 목사로 활약한다. 그리고 그런 희대의 사기꾼인 아버지를 가장 닮은 최순실이 이어서 박근혜의 정치 인생을 설계하고 통제한다.

 

두 집안 다 대단하다, 박 씨나 최 씨나 부녀가 대를 이어 국가를 좌지우지하면서 우리의 후진성을 견딜 수 없을 만큼 압축시켜 시전한 탓에 고장난 압력밥솥 터지듯 우리 시민 의식을 폭발시켜버렸다. 신분제에서 얼떨결에 민주주의로 넘어온 우리 사회에 이건 공인지 과인지, 참 역사의 아이러니다. 물론 한두 명의 상징적 인물이 다는 아니다, 이런 허술하고 빈틈 많은 체제가 부와 권력을 축적하기 유리해서 동조한 일부 기득권층도 있는 거고, 조금만 비겁하면 인생이 즐겁다는 어느 개그맨의 말처럼, 그보다 더 많이 비겁할수록 잘 먹고 잘사는 사회구조를 구축해 놓지 않았는가.

 

그렇게 작정하고 우리나라 정치사를 후진시킨 최태민과 박근혜, 최태민의 아류인 최순실과 박근혜의 원조인 박정희, 그들의 흔적은 지금도 전광훈과 극우 정치권에 끈끈하게 남아 있다, 그러니 이 후진성은 여전히 현재진행형이다. 그런데 왜, 정치는 종교와 야합하는 것일까, 교인도 유권자니 당연히 표 관리를 해야 하는 건 맞다. 그런데 그게 다냐? 그럴 리가

 

우리나라에서 종교는 3대 연고주의를 보완하는, 즉 혈연, 학연, 지연에 이어 교연은 4대 연고주의를 완성하는 연결망이다. 내 편과 네 편을 가르는 표지 중 하나인데 교연이 다른 연고에 비해 선택이 가능하다는 인생 뒤집기의 장점이 있다. 믿을 놈 적은 세상에선 내 편을 구분하는 표식이 어마어마하게 중요하다. 불신이 현명함의 다른 이름인 사회야말로 이마에 인을 치는 종말의 세계니까, 타자를 사탄으로 만들어 무저갱으로 떨어뜨리기에 종교만큼 수월하고 익숙한 게 없으니까.

 

욕망을 자극하는 종교는 그게 뭐든 다 이단이다, 사람을 통제하고 조종하는 종교인은 그게 누구든 다 사탄이다, 왜냐면 그들이 성서에서 말하는 우상 숭배자들이기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