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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미나리’에 나타난 교회의 의미

아난존 2021. 5. 15. 20:01

 

윤여정 배우의 아카데미 여우조연상 수상으로 다시 조명받는 영화 미나리가 극장에서 재상영 중이다. 그런데 이 영화가 그다지 재미는 없다. 그렇다고 엄청 감동적이냐, 꼭 그렇지도 않다. 일상을 다루고 있으므로 보편적 경험의 공유이긴 하나 미국 이민자 1세대의 상황을 잘 모르면 그만큼 감동도 반감되는 내용이다. 그래서 한국인보단 미국인, 특히 미국 국적의 이민자들에게 더 인상적인 영화이다.

 

한국의 80년대를 지나온 사람이라면 88 올림픽 전까지 우리나라 사람들에게 미국이란 나라가 얼마나 미지하고 신비하며 동경의 땅이었는지 기억하고 있다. 지금이야 트럼프의 대통령 당선, 비록 재선엔 실패했지만 이런 사람도 미국을 대표하는 사람으로 추앙받는구나, 하는 신선한 충격과 코로나 대응의 후진성으로 아메리카 드림에 균열이 생겼지만 적어도 20세기까지 미국이 갖는 힘은 막강했다. 군사력과 경제력이란 실질적인 힘 말고도 누구나 꿈을 이룰 수 있는 기회의 나라라는 이미지로 인해 美國(미국)은 글자 그대로 아름다운 나라였고 환상의 세계였다.

 

그러나 지금처럼 미국을 향한 콩깍지를 벗겨내면 미국도 미국대로의 문제점을 안고 굴러가는, 그저 거기도 이러저러한 사연을 가진 다양한 사람들이 각자의 상처와 고통을 끌어안고 살아가는 곳이다. 그 일부를 이루고 있는 구성원이 한국계 이민자일 뿐 더 특별하지도 더 생경하지도 않다. 그리고 이런 일상의 한가운데를 관통하고 있는 신앙의 문제 역시 다른 나라 다른 민족에게도 유사하게 일어나는 현상이다. 이주민들에겐 낯선 곳에서 서로 기댈 수 있는 구심점이 필요하니까, 막막한 현실을 헤쳐나갈 수 있는 지침서가 간절하니까. 다만 우리는 미국 이민 사회에서 한인교회가 그 역할을 담당했다. 한국인 이민사회의 커뮤니티가 교회를 중심으로 이루어진 것이다.

 

따라서 사람들이 많이 모인 곳인 만큼 교회에서 일어나는 사건 사고도 월등 많을 수밖에 없다. 교인들에게 배신당하고 사기당하고 절망하는 사람도 많았단 얘기다. 그래서 제이콥은 교회와 교인들을 못내 꺼린다. 그는 자신의 첫 수확물 공급처의 갑작스러운 취소 상황에서 큰 도시 사는 한국인들, 절대 못 믿는다니까!” 하고 버럭 화를 낸다. 그가 미국에 와서 겪은 일들을 엿보게 하는 장면이다. 그리고 그가 대도시인 캘리포니아와 시애틀을 떠나 시골 오지인 아칸소로 이사 온 이유를 짐작하게 한다. 제이콥이 농장주를 꿈으로 갖기까지의 과정이 이 한 문장에 집약돼 있다.

 

반면 모니카는 남편 제이콥과 달리 한인교회에 대한 애착이 강한 인물이다. 그녀는 새로 간 병아리 공장에서 만난 한인 여성에게 아칸소에 한국인이 15명 산다는 얘기를 듣는다. 이에 모니카가 15명이면 한국교회를 만들 수 있는데 왜 안 만들었는지 묻는다. 그러자 돌아온 대답, “여기 사는 한국 사람들은 다 이유가 있어서 도시를 떠난 거라구, 한국교회에서 벗어나려고.” 그리고 이 대사가 나오기 직전에 아내 모니카를 흘겨보는 제이콥의 장면이 슬쩍 지나간다. 그렇게 당하고도 아직 정신을 못 차렸어? 하는 원망과 경멸의 눈빛을 한 제이콥.

 

그래도 제이콥은 아내의 바람대로 장모와 아이들을 데리고 백인교회에 나가게 되는데 이 교회에서의 헌금 장면이 또 재미있다. 예배 중 헌금 바구니가 도는 시간, 제이콥은 헌금하지 않고 그냥 헌금 바구니를 모니카에게 넘긴다. 그리고 그녀가 무려 100달러를 헌금하자 그는 못마땅해서 그녀를 한참이나 응시한다. 그런데 여기서 압권은 장모인 순자의 행동이다. 순자는 딸 모니카가 헌금한 100달러를 슬그머니 집어서 가져간다. 어른의 지혜가 돋보이는 순간이랄까, 딸의 믿음은 믿음대로 지켜주면서 자신의 세계관을 알뜰하게 지켜낸다.

 

한편 제이콥은 예배를 마치고 집으로 돌아오는 자동차 안에서, 일요일엔 그냥 일하는 게 낫겠다고 모니카가 말하자 그녀를 있는 힘껏 흘겨보며 결국 한소리한다. “다시 안 갈 거면 헌금은 뭐하러 그렇게 많이 내?” 사위의 짜증 섞인 반응에 뒷좌석에 앉아 있던 순자는 100달러를 가방에서 슬며시 꺼내 손자인 데이빗에게 보여주며 의기양양한 표정을 짓는다. 모니카가 헌금한 돈 여기 있거든? 그러니 내 딸한테 뭐라 하지 마, 이런 메시지를 표정으로 전달하는 모성이 듬뿍 담긴 의기양양이다.

 

100달러, 불안정한 주거지인 트레일러 집에 살면서 대출받은 돈으로 농장을 시작한 제이콥에겐 돈 한 푼이 아쉽다. 그래서 200~300달러의 인건비를 아끼려고 우물을 스스로 팠는데 금세 지하수가 바닥난 탓에 수돗물로 농사를 짓는 대참사가 일어난다. 그런데 100달러란 큰돈을 교회 헌금으로 바치다니 화날 만하다. 교회에 대한 이런 제이콥의 태도는 고용인 폴을 대할 때도 나타난다. 폴은 자신의 몸보다 훨씬 크고 무거운 십자가를 등에 지고 돌아다니는 고행을 서슴지 않는 열렬한 기독교 신앙인이다. 그는 자신을 주저 없이 기도하는 사람이라고 소개한다. 그러나 폴의 현실은 기이한 행동과 극심한 가난으로 동네 아이들에게도 손가락질받는 처지다. 그래서 폴의 충고나 배려가 있을 때마다 제이콥은 티 나게 싫은 내색을 한다. 너나 잘해, 쓸모없는 신앙에 빠져 미개한 행동이나 하지 말고. 이런 속마음을 눈빛과 행동으로 여실히 드러내곤 한다.

 

과거엔 종교가 선진문명이었다. 전도는 으레 선진국에서 그렇지 못한 나라로 행해지고. 그러나 현재 종교는 가장 진화가 덜 된, 그래서 다른 영역에 비해 뒤떨어진 분야가 돼 버렸다. 폴의 행동은 그런 종교적 상황을 잘 표현해 주고 있다. 미신에 사로잡힌 극빈자, 그러나 이마저도 없으면 자신에 대해 아무런 긍지를 가질 수 없는 벼랑 끝에 매달린 사람. 그러니 성공을 꿈꾸는 제이콥이 가난하고 미래도 없어 보이는 폴의 종교적 행위를 질색하는 건 당연한 반응이다. 폴처럼 되면 안 되는 거다, 그건 쓸모없는 병아리 수컷이 폐기당하는 것과 같다.

 

영화 미나리는 종교 영화가 아니다. 이민자의 나라인 미국에서 굳이 한국계 미국인이 아니어도 겪을 만한 그저 그만한 고단한 삶을 다룬 영화이다. 그리고 주제도 가족애라는 큰 틀에서 움직이는 상식적이고 보편적인 내용이다. 그런데 유독 교회 이야기가 영화 전반적인 배경으로 끊임없이 등장한다. 이는 이민 1세대에게 한인교회가 얼마나 큰 비중을 차지하는지 알게 해준다. 그러나 부부간의 불통과 긴 시간 쌓이고 쌓인 상처가 터져 가족이 해체될 위기에서 이들 가족을 다시 뭉치게 한 건 오히려 절체절명의 시련이었다. 제이콥의 유일하며 절대적 희망인 채소 수확물을 창고째 전소시킨 화재가 발생한 것이다.

 

그런데 이 엄청난 불행은 역설적이게도 이들 가족에게 새 출발을 다짐하는 계기가 된다. 그 화재의 원인인 순자를 사위도 손자도 포용하며, 낯설고 거친 이방의 땅에서 그래도 믿을 건 가족밖에 없음을 확인한다. 그렇게 결말에 이르고 나면 교회는 비로소 영화에서 완전히 사라진다. 그래서인지 관객은 이 영화에서 교회가 얼마나 많이 얼마나 빈번하게 등장했는지 잊고 만다. 모니카와 제이콥이 서로 뜨겁게 사랑해서 결혼한 뒤 서로를 구원해주자며 이민 온 지 10, 그들을 구원한 건 가족에 대한 믿음과 헌신이었다.

 

모니카가 선천적으로 심장이 약한 데이빗에게 꿈속에서 하늘나라를 본 아이 중 심장을 고친 애도 있다며 하늘나라를 보게 해달라고 기도하라는 장면이 나온다. 이후 데이빗은 죽음에 대한 공포를 갖게 되는데 이때 순자가 기겁하며 데이빗에게 천당 안 봐도 돼! 할머니가 너 죽게 안 놔둬! 누가 감히 우리 손자를 무섭게 해!”를 몇 번이나 간절하게 반복한다. 왜냐하면 구원은 인간이 발을 딛고 사는 지상에서 이루어지는 것이므로, 그리고 서로가 서로에게 구원자여야 하기에 그렇다. 영화 미나리는 이렇게 교회의 통제에서 벗어나 자유로운 인간이 될 것을 요구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