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아보니 오판이었어 12

중년 여성이 공인중개사 공부하면 좋은 이유

공인중개사 합격 알림을 받은 날 무척 행복했고 자격증을 배송받은 날 다시 한번 행복했다. 6개월간 올인했던 시간과 노력이 보상받았고 이후의 계획들이 진행될 수 있어서 당연히 기뻤지만, 무엇보다 떨어졌다고 마음을 접고 있었기에 합격이 더더욱 기뻤다. 시험 당일 1교시 때 10~15분을 남기고 어지럼증이 와 남은 문제들을 날렸다. 그래서 시험지에 답안 체크가 제대로 안 돼 있다는 사실조차 집에서 가채점하며 알았다. 그렇게 가채점 결과 2차 합격, 1차 알 수 없음. 그래도 공부한 게 후회되진 않았다. 짧고 굵게 끝내자는 생각으로 최선을 다해 공부했기에 종종 수행하는 기분이 들었고 이러다 득도하겠다 싶었다. 문득문득 마음 밑바닥에서 잊었다고 여겼던 갖가지 감정들이 올라왔다 사라질 때면 마음공부 하는 느낌이었고..

왜 나는 tmi가 됐을까?

지독히도 말이 없었던 사춘기 때의 ‘나’가 지금의 ‘나’를 본다면 장담하건대 30초 만에 손절각이다. 왜? 말이 너무 많아! 쓸데없는 정보를 순식간에 마구 방출하는 나를 발견할 때 무엇이 나를 변하게 했을까 궁금해진다. 원했던 건 아니지만 한때 나의 트렌드였던 신비주의 버리고, 이 또한 바랐던 건 아니지만 먹물 이미지 버리고, 시간 아까운 줄 모르며 수다 떠는 동네 아줌마가 된 이유가 뭘까 하는 궁금증. 불통이 당연시되는 사회, 단절이 일상화된 사회에 나는 불안감을 넘어 공포심을 느낀다. 저 사람과 대화하는 건 불가능하겠지? 하고 느낄 때 드는 오싹한 소름, 동시대에 살면서 같은 언어를 공유하는데 전혀 다른 말을 하고 있을 때 드는 이질감을 나는 잘 견디지 못한다. 이 부분에 대해 너무 예민해서 그런지 ..

슬퍼도 사는 것과 슬퍼서 사는 것의 차이

창밖에서 흘러들어온 조수미의 ‘나 가거든’ 때문에 일시정지 상태가 된 나, 아 나의 18번, 노래방에서 이 노래를 선곡하면 분위기 확 다운시켜서 귀가 시간을 앞당기게 만드는 불후의 우울곡, 나 슬퍼도 살아야 하네, 나 슬퍼서 살아야 하네, 여기서 ‘슬퍼도’가 주는 무기력감을 ‘슬퍼서’가 의지로 방어하는 이 부분이 좋아서 자꾸만 부르게 되는 노래, 나 가거든. 나는 언제 갈지도 모르면서, 항상 오늘을 내 인생의 마지막 날인 것처럼 살라는 말에 확 꽂혀서 대체로 그렇게 살아왔다. 현재의 감정에 충실하며 당장 눈앞의 사람에게 성실하게, 내일 곧 죽어도 괜찮다는 심정으로 오늘에 미련을 갖지 않도록. 그래서 나는 오늘도 건재하다, 그런데 마냥 건재하기만 하다, 이게 감사하지 않다는 소린 아니다, 당연히 감사하다...

발작 버튼과 트라우마의 관계

사람마다 트라우마가 있고 그 트라우마를 건드리면 발작 버튼이 작동한다. 나는 위선과 가식을 만나면 기분이 나빠진다. 이게 왜 나의 트라우마가 됐을까 긴 시간 많이 생각해봤지만 잘 모르겠다. 어릴 땐 남자의 허세와 여자의 허영이 싫다고만 생각했는데, 이 나이 되고 보니 그냥 인간의 종특인 위선과 가식이 싫은 거였다. 허세와 허영이 후천적으로 주입된 자기방어체제라면 위선과 가식은 선천적인 자가면역체제 같은, 그래서 인간 유전자 깊숙이 흐르는 원죄 같은 느낌? 그렇다면 나는 그냥 액면가의 인간이 싫은 거다. 세상에 맙소사! 인간 고유의 종특을 혐오하니 어쩔 것인가, 그래서 내가 염세주의자? 아마도 높은 확률로 그렇지 않을까 싶다. 부정부패를 나눠진 인간끼리 서로서로 감싸주듯 그렇게 다수의 인간은 부조리를 인정..

내가 난데, 2022년이라고 뭐가 다를까?

어제는 2021년이었는데 오늘은 2022년이란다. 그게 뭐? 나라마다 새해도 다르고 시간도 다른데, 우린 이렇게 하자, 그렇게 정한 것일 뿐. 그렇게 생각하면 감흥이 참 없기도 없다. 어쨌든 나이 들수록 1년이란 시간 감각이 짧게 느껴지긴 하지만, 지구가 공전을 멈추지 않는 한 1년은 365일일 거고, 자전을 멈추지 않는 한 1일은 24시간이겠지, 뭐 어쩌라고? 그런데 삶이 이어진다. 자전 따위 무시하고 싶어도 해가 지고 해가 뜬다. 공전 따위 무시하고 싶어도 육체가 노화되고 망가진다. 시대와 동떨어져 있어도 시대 속에서 살아가고, 사회와 친화적이지 않아도 사회적 인간으로 살아간다. 내가 난데, 그렇게 생각해봤자 시공의 영향을 받는 육체를 가진 생명체가 완전한 실존적 개체를 주장할 순 없다. 더하여 사회..

에난티오드로미아로 본 가세연 관찰기

나는 가세연을 왜 볼까? 가세연의 진행자들이 진실하다는 생각은 들지 않는다. 어떨 땐 구독자들이 듣고 싶어 하는 말을 하기 위해 머리와 가슴이 따로 노는 모습도 보인다. 그래서 유튜브가 무섭다, 표정을 완전히 감추기가 어려워 때때로 보여줘야 할 표정에 대응하기 위해 마음이 강제 동원될 때. 그렇게 진행자들은 자신이 만들어놓은 세상에 점점 동화돼 버린다. 첨엔 브랜드로 애국 마케팅을 했는데, 애국, 애국, 하다가 진심 그 세계에 빠져버린다, 마치 처음부터 그랬다는 듯. 자신의 팬들을 잃지 않기 위해서, 그 세계에서만큼은 영웅이 돼야 하니까, 홍준표가 청년들의 지지에 진심으로 감격해서 변화된 것처럼. 삶의 어느 순간 완제품이 돼버린 사람들은 그 닫힌 모습이 보기 좋든 싫든 변하지 않겠지만, 그렇지 않은 사람..

나는 나를 불신한다

나는 사람의 이면을 볼 줄 모른다. 그걸 보라는 말을 20년 넘게 들었지만, 안 보이는데? 뻔히 보면서 모른 척하는 게 아니라 안 보이는데 어쩌란 말이냐! 그래서 드는 생각, 나만 그런가? 놉! 그랬다면, 열 길 물속은 알아도 한 길 사람 속은 모른다는 속담이 지금도 유용할까? 그렇다면 다른 사람들은 대체 어떻게 남의 속을 안다고 할까? 그렇다! 일단 관계 초반엔 불신하고 보는 것이다. 선의를 가장한 속내가 있을걸? 그게 인간이야, 그러면서 마음을 주지 않으니 크게 상처받을 일도 뒤통수를 맞을 일도 생기지 않는다. 그다음 관계 중반엔 상대의 말이 아니라 행동에 따라 판단하는 것이다. 세상 선한 얼굴로 선한 말들을 해봐야 행동이 그렇지 않으면, 역시 내가 생각한 게 맞았어, 확신이 선다. 그래서 관계 후반..

역지사지와 상대주의

나는 엄마와 긴 대화를 하지 않는다. 엄마한테 내 언어가 외국어라는 걸 알고 있기에, 그래서 되도록 엄마 세계의 언어로 번역해서 말하는 데 익숙해져 있다. 그 사람은 나한테 이익이 돼, 이 일은 나한테 돈이 돼, 이런 식으로…, 우리 엄마에게 ‘나’는 배운 사람이고, 배운 사람은 우리 사회를 사는 데 유리한 사람이다. 어쨌든 나는 엄마 말을 번역하는데 엄마는 내 말이 번역이 안 되니 내가 엄마의 언어를 써야 한다고 아주 오랫동안 그렇게 믿어왔다. 내가 내 언어를 시전하면 어김없이 감정의 충돌이 따라왔고 그 후유증이 컸으므로 웬만해선 내 생각이나 감정을 드러내지 않았다. 그렇다고 우리 엄마가 모성애가 없다거나 나를 잘 돌봐주지 않았다거나 그건 아니다. 오히려 과하게 나를 위해 집중하고 헌신하셨다. 그리고 ..

관계적 사고에서 벗어나려면...

나는 관계가 어렵다. 뭐 이렇게 열라 어려운 게 세상에 존재할까, 싶다. 어릴 때는 내 세계 안에서 아무 생각 없이 지냈던 터라, 그 무념무상의 어린 아이는 관계가 어려운지 쉬운지 아주 기초적인 개념조차 없었다. 남에게 해를 입히지 말아야지, 그것만 지키면 별다른 문제가 없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학교 선생님과 손잡고 식당 가고 물건 사러 다녀도 별로 불편하지도, 그렇다고 대단히 좋지도 않은, 그냥 모두가 다 그런 줄 알았던 진짜로 생각 없는 아이였다. 그렇게 오는 사람 막지 않고 가는 사람 잡지 않는 마인드는 언제 형성됐는지도 모르게 나의 정체성이 돼 버렸다. 내게는 특정 사람에 대해 그닥 좋은 감정도 그닥 나쁜 감정도 없었던 것이다. 사람이니까 그저 누구든 사이 좋게 지내면 그만이었다. 어차피 다 같은..

죽음은 웬만하지 않다

천장이 빙글빙글 도는 증상이 멈추지 않아 구토를 해가며 부축을 받아 간신히 응급실에 갔다. 이 검사 저 검사를 받는 동안 눈을 계속 감고 있었다. 어지러워서, 이 현상을 의사는 오른뇌와 왼뇌의 정보가 비대칭이라 그렇단다. 이유는 오른뇌와 연결된 귀 안쪽 중심을 잡는 영역에 염증이 생겨서, 원인은 모른단다, 아직 밝혀진 바 없단다. 죽을 것처럼 괴로웠지만 들어보니 죽을 병은 아니었다. 응급실에 있는 동안 일 관계로 연락이 와서 지인 2명에게 알렸다, 지금 못 일어난다고. 이석증으로 알려진 병과 드러나는 증상은 같은데 의사는 그거 아니고 현훈증이라고 했다. 나중에 찾아보니 이석증의 원래 명칭이 양성 발작성 체위성 현훈이다. 그런데 내 경우는 이석에 문제가 있는 것은 아니고 그 부근에 염증이 생긴 것이니 이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