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아보니 오판이었어

중년 여성이 공인중개사 공부하면 좋은 이유

아난존 2023. 1. 14. 14:56

 

공인중개사 합격 알림을 받은 날 무척 행복했고 자격증을 배송받은 날 다시 한번 행복했다. 6개월간 올인했던 시간과 노력이 보상받았고 이후의 계획들이 진행될 수 있어서 당연히 기뻤지만, 무엇보다 떨어졌다고 마음을 접고 있었기에 합격이 더더욱 기뻤다. 시험 당일 1교시 때 10~15분을 남기고 어지럼증이 와 남은 문제들을 날렸다. 그래서 시험지에 답안 체크가 제대로 안 돼 있다는 사실조차 집에서 가채점하며 알았다. 그렇게 가채점 결과 2차 합격, 1차 알 수 없음.

 

그래도 공부한 게 후회되진 않았다. 짧고 굵게 끝내자는 생각으로 최선을 다해 공부했기에 종종 수행하는 기분이 들었고 이러다 득도하겠다 싶었다. 문득문득 마음 밑바닥에서 잊었다고 여겼던 갖가지 감정들이 올라왔다 사라질 때면 마음공부 하는 느낌이었고, 문제 푸는 기계처럼 단순하게 작동되는 반복행위를 통해 마음이 고요해지는 명상 효과도 있었다. 그렇게 문제 푸는 거 외의 나머지 생활은 최대한 절제하면서 나는 내가 나 자신을 용서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랬다. 굳이 들춰내고 싶지 않았던 감정, 나는 중고딩 때 최선을 다해 공부하지 않았다. 그래서 재수하고도 후기대를 갔다. 물론 대학 생활은 즐거웠고 학교에 대한 불만도 없었지만, 이후 사회생활 하면서 종종 학벌이 아쉽기는 했다. 전기대 선택을 달리했다면 하는 미련과 고딩 시절 공부를 열심히 했다면 하는 후회가 전혀 없었다면 거짓말이다.

 

우리 사회에서 지금 중년의 나이를 지나가고 있는 여성들, 여기서 중년 연령대를 어디로 봐야 하나 애매하긴 한데 특히 5~60대 학력고사 세대(82~93학번)로 전기 후기 단 한 번씩의 기회에서 떨어지면 전문대 가야 했던 그 세대는 대학 선택에 운이 일부 작동돼 학벌에 한이 맺힌 사람들이 많다. 나보다 공부 못 했던 애가 더 좋은 대학 갔는데 같은, 선지원 후시험이라 안전 지원하려면 많이 하향해야 했다는 같은.

 

또한 당시만 해도 오빠나 남동생에게 대학 진학을 양보 당하고 실업계 고등학교로 진학해 스무 살에 취업해야 했던 지금의 중년 여성들, 그리고 이러니저러니 해도 한국인치고 학벌 콤플렉스 없는 사람은 극소수 중 극소수이니 학벌에 대한 기본적인 한은 바닥에 전제로 깔고.

 

이런 이유로 한국의 엄마들은 자신이 공부 못 했거나 안 했던 한을 자녀에게 푸는 경향이 있다. 나는 그런 모습을 볼 때마다 엄마 본인이 공부를 직접 하지 싶었는데, 공인중개사 시험은 그런 엄마들에게 안성맞춤이다. 적당히 어렵고 자기통제가 많이 요구되며 성과로 증명할 수 있는 공인된 자격증 시험.

 

그래서 나는 중년 여성들이 자신에게 새로운 기회를 줄 수 있는 이벤트로 국가자격증에 도전해 보라고 권하고 싶다. 인생 전반전을 정리하고 후반전을 설계할 수 있는 도약의 발판으로 자격증을 취득하는 것, 물론 두말할 나위 없이 중요하다. 그러나 더 중요한 것은 죽기 전에 자신의 한계에 정직하게 부딪혀 보는 것이 정말 필요하기 때문이다. 자신의 한계를 외면하면 내 상태가 그 지점에서 결정된다. 그러면 나이를 먹는다고 해서 더 깊어지지도 넓어지지도 않는다. 그렇게 진짜 나 자신과 만났을 때 비로소 현재의 나를 이해하고 과거의 나를 용서하며 온전해진 나를 사랑하게 되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