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계인이 된다는 것 42

애니메이션 소울, 일상은 어떻게 비극이 되었나?

영화 소울은 아름답고 안전하다. 영혼 22호의 등장에서, 아 결말은 정해졌구나, 영화의 메시지가 직관적으로 예측 가능해도, 영상이 한없이 귀엽고 엄청 사랑스러워서 시각적 포만감과 청각적 설렘만으로 참 좋았다고 말할 이유가 차고도 넘친다. 움직이는 동그라미에 정신줄 놓는 나 같은 사람은 특히나 탄생 대기 중인 영혼들이 우르르 까르르 몰려다니는 화면에서 이성의 끈을 놓아버린다. 넘나 귀엽... 그러나 이 영화의 주제인 일상의 소중함, 매 순간의 기쁨을 말하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 그래서 이런 주제가 오히려 더 판타지가 아닌지, 그런 생각을 떨칠 수가 없어서 가슴이 묘하게 아려온다. 나는 대체 언제부터 일상의 기쁨을 포기해 왔을까. ‘소확행’(작지만 확실한 행복)에는 큰 행복을 바랄 수 없는, 계층 사..

한국인은 진짜 남 잘되는 꼴을 못 볼까?

자신을 중심으로 동심원적 사고를 하는 거, 인간이라면 헤어나오기 어려운 유혹이다. 데카르트가 그러지 않았는가, 나는 생각한다, 고로 존재한다고. 이를 확장해보면 내 생각이 미치는 영역, 그러니까 내 인식의 영역에서 존재하는 것들하고만 나는 살아간다는 것. 그러니 나를 중심으로 생각하는 건 인간에겐 너무 당연한 존재론적 조건이다. 어쨌든 생각하는 나 없이 나의 존재를 무엇으로 증명할까, 다만 문제는 내가 주체라는 당위성과 나의 가치라는 목적성이 같은 거로 인식되면서 생기는 이 죽일 놈의 자기중심적 이기주의, 내가 생각하는 존재라는 것과 내 가치가 타자보다 우월하다는 것은 다른 얘긴데 우린 이걸 분리해내지 못한다. 내 감기가 남의 암보다 힘든 게 인간이니까. 그러니 문제는 동심원적 사고가 아니다. 동심원 사..

트럼프는 어쩌다 혁명가?

미국이 난리다. 트위터 대통령이란 이상한 트렌드를 만들어낸 트럼프가 자신의 트위터 계정을 영구 정지당했다. 대체 트럼프는 코로나로, 이상기후로 가뜩이나 분위기가 어두운 21세기에 무슨 짓을 하는 걸까. 20세기 어부지리로 패권 국가가 된 미국의 민낯은 어떤 이에겐 생각보다 날 것이어서 생경하고, 어떤 이에겐 생각만큼 남루해서 흥미진진하다. 현재 미국은 시위대의 의사당 난입이란 초유의 사태를 맞아 의회 경비 담당 경찰 2명, 트럼프 지지자 시위대 4명이 사망에 이르렀고, 트럼프에 한 발을 살짝 걸쳤던 공화당 지지자들조차 트럼프를 손절하는 상황이다. 더하여 시위대를 선동했다는 죄목으로 트럼프 탄핵안이 발의됐으며 트럼프와 미국의 미래가 씨줄 날줄로 엉켜 버렸다. 어쩌자고 이러는 걸까. 설마 대통령씩이나 되겠어..

지랄맞은 경험론

자신이 직접 경험하지 않으면 절대 모르는 게 인간이다. 그런데 문제는 직접 경험해서 얻은 깨달음은 절대 타협할 수 없다는 거, 그리고 오로지 자신이 경험한 그것만을 절대 진리라고 가슴에 묻고 뼈에 새긴다는 것. 그래서 경험해야 아는 것은 경험한 그것만을 안다는 거, 참 지랄맞은 특징이다. 확신에 차서 말하는 사람일수록 두려움을 주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그 사람은 그것만 안다는 거, 그래서 무섭다. 그래서 열정적이다. 그래서 자신만만하다. 그래서 어쩔 것인가. 코로나가 지긋지긋하다는 이 국면 속에서도 교회 확진자가 연일 나오는 거, 비기독교인들 입장에선 당최 이해하기 힘들다. 물론 모든 기독교인이 다 그렇게 맹목적이진 않다. 그러나 일부 기독교인들은 분명 맹목적이다. 왜? 경험에서 나온 신앙이니까. 성령..

염세주의 만세, 만만세!!

기회주의와 싸우는 건 극소수를 제외한 세상 전체와 싸우는 게 아닐까, 그래서 성서에선 심판하지 말라고, 그래 봐야 너만 죽는다고 예수를 통해 보여준 게 아닐까, 이게 사람이고 세상사인데 죽었다가 부활하는 게 무슨 의미가 있는지, 그래 봐야 그 단맛은 또 기회주의자들에게 돌아갈 텐데, 그래서 성서가 말하잖아. 먼저 권력을 잡아라, 다윗처럼, 그럼 너희 죄가 사해질 것이다. 먼저 탐욕을 부려라, 야곱처럼, 그럼 너희를 우두머리로 세울 것이다. 먼저 질투에 눈이 멀어 살인하라, 카인처럼, 그럼 내가 너희를 보호하리니. 나는 죄인들의 왕이니 죄를 짓는 자만이 나의 백성이라. 죄를 미워하는 자, 그대는 나의 자리를 탐하는 자여, 그대를 사랑하나 그래서 기다리는 건 죽음과 고통 그리고 부활. 이 무한반복 업보의 순..

헬 마우스 vs 가로세로연구소 vs 나꼼수

대안매체의 좋은 점, 일단은 진입 문턱이 낮고, 이단은 내용이 소박하며, 삼단은 진실 대비 진정성의 가성비가 탁월하다. 누구나 자기 콘텐츠만 있으면 방송개설이 가능하고 구독자 수가 곧 권위이며 조회 수가 바로 수입이다. 얼마나 쌈박한가, 대중의 지지와 호응으로 인지도가 결정된다니 이거야말로 민주주의의 성과요 업적이다. 그래서 팟캐스트의 세계는 자유하고 유튜버의 세상은 경이롭다. 별별 게 다 있구나 싶은. 그래서겠지만 말도 많고 탈도 많다. 그래도 놀랍지 않은가, 하고 싶은 말을 다 하는 데 눈치 보지 않아도 되고 높은 곳의 허락을 받지 않아도 되니. 그래서 즐겁지 아니한가, 나를 ‘나’라고 말해도 시공의 제약을 받지 않는다. 물론 전파력이나 영향력 역시 당사자 개인의 몫이니 그건 알아서들 할 일이고. 나..

단어 '꼰대'의 진화와 함정

최근 어느 분과 통화 중에 자꾸 꼰대라는 말을 써서 의문이 들었다. 자신의 문제를 가리킬 때도 꼰대라서, 남을 비난할 때도 꼰대라서, 그냥 이 단어 하나로 다 퉁치는 것이다. 전에도 이분과 대화가 어렵다는 생각은 종종 했었지만 이날은 특히 더 말끝마다 내가 꼰대라서, 당신이 꼰대라서, 이렇게 모든 결론을 꼰대 깔때기로 수렴시키니 몇 분 안 되는 대화가 무척 피곤하게 느껴졌다. 꼰대라는 말에 상처받은 적 있으세요? 지금 그 단어 너무 많이 쓰고 계세요, 결국 묻고 말았다. 그래도 명색이 글쓰기 선생인데 단어 하나에 갇혀서 사유를 매립시키는 건 자신에게 너무 무성의하지 않은가. 내가 하도 그 말을 많이 들어서 그래요, 역시 그랬구나, 이분도 벌써 약자가 되셨구나, 자신이 상처받은 걸 스스로 해소하지 못하고 ..

죽음보다 두려운 늙음

가진 게 많지 않아서 그런지 죽음이 두렵다는 생각은 잘 들지 않는다. 그러나 늙는다는 것에 대한 두려움엔 종종 사로잡힌다. 지천명의 나이를 지나면서는 그게 더 심해지더니 늙기 전에 죽어야 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마저 들곤 한다. 그러면 대체 난 왜 이렇게까지 늙음이 두려운 걸까? 나이가 든다는 건 경험치가 쌓인다는 거니 그만큼 득템거리도 많아야 이치에 맞다. 당연히 삶이 더 다채롭고 지혜로우니 그만큼 풍요로워야 하는데 불행히도 나는 그런 어르신을 거의 만나지 못했다. 그리고 나 역시 제대로 잘 늙을 준비가 되어 있지 않다. 나라고 오류 많은 과거에 대한 후회로 무기력해지지 않을 자존감이, 나라고 애써 버텨온 삶에 대한 상실감으로 심술궂어지지 않을 자신이, 또는 나라고 노인을 바라보는 주변의 고정된 시선에서..

강요당하는 행복

행복하고 싶다, 행복해지자, 행복해라 등등 행복하지 않으면 큰일 날 것 같은 사람들을 많이 본다. 사실 나도 습관처럼 남들에게는 행복하고 좋은 시간 어쩌고 같은 하나 마나 한 인사로 마무리할 때가 많다. 그게 가장 무난하니까, 그래야 정상적이고 평범해 보일 테니까. 근데 대체 뭐가 행복인 걸까? 단순하고 어리석은 나도 삶의 진리라고 하나 깨달은 게 있다면, 세상에 공짜는 없다는 거다. 큰 기쁨은 큰 슬픔을 동반하고 희망이 높을수록 절망도 깊다. 많이 사랑하고 사랑받은 사람일수록 이별의 아픔도 크기 마련이다. 이건 너무 단순해서 모르고 싶어도 모를 수가 없다. 많이 가질수록 놓기가 어려운 게 당연하다. 이건희 회장이 6년간 병상에 있다가 겨우 죽을 수 있었던 것도 손에 쥔 게 많으니 손을 펼 수 없었던 것..

1인 가구 시대가 올지 몰랐다

한국인을 분노로 폭발시키고 도덕성을 마비시키는 건 역시 자녀 문제다. 교육, 취업, 병역, 세금 등 불법과 초법이 난무하는 이유의 정점엔 ‘내 자식만은’이란 신앙이 전제한다. 자녀를 위한 불법은 희생과 헌신이며 자녀를 위한 초법은 사랑과 정의이다. 나는 그게 두려웠다. 나라고 그런 관행과 사회 분위기에서 벗어나 자유로울 수 있을까? 그럴 수 없을 것 같았다. 그래서 나는 자녀 없는 삶을 택했다. 맹목적으로 굴러가는 제도적 삶의 눈부신 절대성에 맞춰 살기엔 내가 너무 약하고 예민했기에 다른 선택은 없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지금도 여전히 나는 그렇게 생각하고 있다. 우리나라에서 성향, 이념, 계급, 성별 다 필요 없는 게 딱 두 가지인데, 그중 하나가 자식 문제고 다른 하나는 불륜 문제라고. 들키지 않고 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