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계인이 된다는 것

지랄맞은 경험론

아난존 2021. 1. 7. 08:52

 

 

자신이 직접 경험하지 않으면 절대 모르는 게 인간이다. 그런데 문제는 직접 경험해서 얻은 깨달음은 절대 타협할 수 없다는 거, 그리고 오로지 자신이 경험한 그것만을 절대 진리라고 가슴에 묻고 뼈에 새긴다는 것. 그래서 경험해야 아는 것은 경험한 그것만을 안다는 거, 참 지랄맞은 특징이다.

 

확신에 차서 말하는 사람일수록 두려움을 주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그 사람은 그것만 안다는 거, 그래서 무섭다. 그래서 열정적이다. 그래서 자신만만하다. 그래서 어쩔 것인가.

 

코로나가 지긋지긋하다는 이 국면 속에서도 교회 확진자가 연일 나오는 거, 비기독교인들 입장에선 당최 이해하기 힘들다. 물론 모든 기독교인이 다 그렇게 맹목적이진 않다. 그러나 일부 기독교인들은 분명 맹목적이다. ? 경험에서 나온 신앙이니까.

 

성령 체험이 뭐냐고 묻는다면 한마디로 정의할 수 없다. 사례별로 다 다른 걸 어쩌랴. 하느님 체험도 마찬가지, 이것도 사례별로 다 다르다. 그러나 교집합이 있다! ‘의 체험!! ‘는 교회에 다니면서 생전 알지 못했던 뜨거움을 느꼈고, ‘는 기도하면서 가슴 벅찬 충만감을 느꼈으며, ‘는 선택받았다는 설교를 들으며 선민의식으로 터질 것 같은 자부심을 느꼈다. 그 느낌이 의 체험인 이상 다른 말은 들리지도, 현실의 문제 따위 보이지도 않는다.

 

누구의 삶인들 만만하랴. 너나 나나 할 거 없이 만만치 않고 녹녹지 않기에 그 고단함의 틈새로 기복신앙이 자리한다. 기복신앙 자체는 나쁘지도 좋지도 않다. 사는 게 힘드니까 어디에든 누구에게든 기대는 거 당연한 일이다.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수행이야 본래 수도자들 몫이고 대중은 언제나 기복이었다.

 

모든 종교가 한국에만 오면 기복으로 변한다고 오해하는 사람들이 있는 것 같은데 그렇지 않다. 원래 종교란 게 민중에겐 기복이고 지배자에겐 통치의 수단이며 성직자에겐 직업이다. 당연히 복을 많이 주는 종교가 흥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그리고 당연히 결핍이 많은 사람일수록 종교를 찾을 수밖에 없는 것이다.

 

코로나 확진의 주범으로 끊임없이 거론되는 교회가 징글징글하다는 혹자들은 왜 기독교인 중에 유난히 탐욕스러운 사람이 많은지 이해할 수 없다며 화를 낸다. 욕망을 부르는 것은 결핍인데 자신의 결핍을 종교에 의지해서 채우거나 버티는 사람들이라서 그렇다고 한다면 이해가 되려나. 그리고 그들은 각기 다른 방법과 경로로 자신만의 은혜를 확신하는 경험론자들이라 설득은커녕 사용하는 언어가 달라서 소통도 불가하다.

 

물론 모든 종교인이나 신앙인이 자신의 결핍을 감추려고 탐욕에 허덕이는 것은 당연히 아니다. 그러나 그들은 사회문제를 일으키지 않기 때문에 거론될 이유가 없다. 우리가 사유를 강요당하는 순간은 언제나 문제와 만났을 때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