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계인이 된다는 것

단어 '꼰대'의 진화와 함정

아난존 2020. 11. 21. 21:14

 

최근 어느 분과 통화 중에 자꾸 꼰대라는 말을 써서 의문이 들었다. 자신의 문제를 가리킬 때도 꼰대라서, 남을 비난할 때도 꼰대라서, 그냥 이 단어 하나로 다 퉁치는 것이다.

 

전에도 이분과 대화가 어렵다는 생각은 종종 했었지만 이날은 특히 더 말끝마다 내가 꼰대라서, 당신이 꼰대라서, 이렇게 모든 결론을 꼰대 깔때기로 수렴시키니 몇 분 안 되는 대화가 무척 피곤하게 느껴졌다.

 

꼰대라는 말에 상처받은 적 있으세요? 지금 그 단어 너무 많이 쓰고 계세요, 결국 묻고 말았다. 그래도 명색이 글쓰기 선생인데 단어 하나에 갇혀서 사유를 매립시키는 건 자신에게 너무 무성의하지 않은가.

 

내가 하도 그 말을 많이 들어서 그래요, 역시 그랬구나, 이분도 벌써 약자가 되셨구나, 자신이 상처받은 걸 스스로 해소하지 못하고 타인에게 시전하는 것도 그렇고, 층위의 섬세함을 포기하고 간편하게 한군데로 몰아 버리는 사고도 그렇고.

 

나는 이분을 잘은 알지 못한다. 그냥 일 관계로 맺고 있는 사이일 뿐. 그래도 자신과 주변에 대해 이해하려고 노력해오신 분이라고 생각하고 있었다. 대체 꼰대, 이 단어가 뭐길래 누군가를 좌절시키고 사유의 흐름을 꽉 막아버리는 걸까.

 

인터넷 검색 결과 꼰대의 어원은 두 가지, 번데기의 영남 사투리 꼰데기에서 왔다와, 프랑스어로 백작이 콩테인데 일제강점기 때 매국노들이 백작 등의 작위를 받고 자신을 자랑스럽게 꼰대라고 칭한 데서 왔다, 이렇게 둘로 분류됐다.

 

둘 다 그럴듯하다. ‘꼰데기는 번데기의 자글자글한 주름 모양에 착안한, 그래서 노화에 대한 비하가 있고, ‘콩테는 이기적인 기회주의자들에 대한 풍자에서 비롯된, 그래서 시대착오적인 편협함에 대한 조롱이 있고, 둘 다 어원으로 손색이 없다.

 

물론 어원은 어원일 뿐이다. 어원의 특성상 맞는 경우도 있지만 후대의 역추적 결과로 후대인에 의한 각색일 경우도 있으니까. 어원이 원래 그런 것이다. 그렇지 않을까? 그렇지 않겠어? 여기서 출발한 가설이다.

 

현재 국어사전에선 학생들이 선생, 아버지, 늙은이를 이르는 은어라고 돼 있다. 은어, 끼리끼리 몰래몰래 쓰는 말이란 건데, 작금의 현실에서 보자면 은어보다는 마녀, 빨갱이처럼 상대의 방어를 허락지 않는 공격용 어휘로 자리 잡았다.

 

그러니까 꼰대가 마녀와 빨갱이 반열에 우뚝 오른 셈이다. 장하다, 꼰대여!

 

나는 네가 싫어, 변명이나 합리화 따위 용납 못 해, 넌 그저 나에게 악마 같은 존재야, 악마가 사연 있고 이유 있디? 악마로 타고날 뿐이지. 이처럼 상대를 악마화해 버리는 것, 이건 상대가 나와 대화할 의지가 전혀 없음을 알려오는 것이라 대화는 종결하고 소통은 이데아로 출장 보내야 한다.

 

빨갱이가 겨우 힘을 좀 잃을 만하니 이젠 꼰대가 그 자릴 넘보는가?

 

나는 나여서 문제가 있는 거고 당신은 당신이어서 문제가 있는 거다. 타인을 개별적으로 봐줄 여유가 없는 우린 서둘러 일반화하고 급하게 정의 내린 뒤 눈에서 맘에서 치워 버린다. ? 나는 바쁘고 내 시간은 소중하며 내겐 당신 따위 고민할 틈새가 없거든?

 

그렇게 자신이 쌓은 바벨탑 안에 숨어서 자위한다. 너는 내게 상처 따위 입힐 수 없어, 나는 옳고, 잘못된 건 너니까. 그래서 사유는 흐르지 않고 고인 채 화석유물이 된다. 그럼 어쩌라고? 글쎄 말이다, 정말 어렵고 어려운 일이다. 일단은 문제를 문제라고 말하는 데서 출발할밖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