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통과 관계

역지사지의 오류

아난존 2018. 10. 13. 07:45



상식이라고 말하는 것 중에 사실은 상식이라고 말하기 어려운 것들이 있다. 그중 하나가 역지사지의 태도를 강조하는 것이다.

 

공동체의 결속력이 높은 사회에서 몇 개 안 되는 유형화된 정체성을 가진 집단이 아니라면, 역지사지는 공염불에 지나지 않는다. 왜냐, 상대는 내가 아니기 때문이다. 그러니 내가 대접받고 싶은 대로 상대에게 해주라는 역지사지, 이 말은 참 좋은 말이긴 한데 현실에서 적용하는 데는 한계가 많다.

 

특히 이 역지사지의 태도는 관계가 친밀할수록, 즉 거리가 가까울수록 적용되지 않는다. 나한테 하듯이 남한테도 똑같이 하는 것, 이게 민폐며 무례가 되는 일이 얼마나 많은가.

 

내 생각과 타인의 생각은 같지 않다. 당연히 내가 바라는 것과 타인이 바라는 것도 같지 않다. 특히 고유한 성질이 많은 사람일수록 이런 역지사지의 오류에 빠지면 멘탈이 나가기 쉽다. 상대가 어디에서 화를 내는 건지 도무지 알 수 없는 경우, 역지사지만큼 도움 안 되는 쓸데없는 태도도 없다.

 

그런데 인간은 자신을 중심으로 사고할 수밖에 없다. 나를 기준으로 생각해서 기껏 한다는 배려가 나 같아도, 나 같으면, 이런 수순이다. 우리가 점점 고립화, 원자화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타인은 타인만의 세계를 가진, 나하고는 사유방식이 달라서 언어도 다른, 우리가 서로에게 외계생명체인 이상 우리는 번역기 없는 세상에 던져진, 각자의 바벨탑에 갇힌 개별자들인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