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한 묵시록은 신학적 가치가 낮다?
요한 묵시록의 윤리적 가치들은 다니엘서와 에즈라 4서 같은 유다 묵시록들의 윤리와 크게 다르지 않으며, 예수의 가르침을 중시하는 다른 복음서들과 거리를 보이는 것이 사실이다. 그래서 요한 묵시록에 그리스도의 가르침이 없다고 부정한 마르틴 루터부터 “빈약하게 그리스도화된 유다이즘”1으로 여긴 루돌프 불트만에 이르기까지 몇몇 그리스도교 신학자들에게 이 책은 스캔들의 원천이 되었다.2
이처럼 과거 연구사에서 종종 제기되었던 문제는 요한 묵시록이 고유한 의미에서 그리스도교적인 것인지 아니면 약하게 그리스도화 되었지만 유다교적인 문헌인지 하는 것이었다. 그러나 그리스도교적인 요소인 그리스도론은 요한 묵시록에서 이차자료가 아니라 이 책을 관통하는 중요한 사상이다. 또한 요한 묵시록의 저자는 유다인이지만 율법의 유효성을 강조하지 않고, 전적으로 그리스도교적인 보편주의를 전제한다. 즉, 요한 묵시록 5,9에 의하면 그리스도의 구원의 행위는 모든 인간들에게 유효하다. 더불어 요한 묵시록 7,9 이하에서는 모든 민족들 가운데서 선택받은 사람들이 어린양의 보좌로 나온다.3
이는 구약에서 아브라함에게 약속하신 야훼의 복이 “너를 큰 민족이 되게 하리라”(창세 12,2)였던 것과 비교해 보면 그 차이를 뚜렷이 감지할 수 있다. 요한 묵시록은 다른 신약의 복음서들과 마찬가지로 ‘모든 나라와 민족과 언어와 백성들’ 전부가 복음의 대상이다. 유다인들의 세계관이 확장되면서 기존의 메시아관도 변화되는 것을 볼 수 있는데, 이는 묵시문학의 유다적 전통이 요한 묵시록에서 새롭게 계승되고 있음을 시사한다. 이로써 그리스도인들은 유다인을 넘어선 자리에서 하느님의 위치를 재발견한다.
그러나 묵시문학의 대가 존 J. 콜린스도 지적했듯이 “성서학계가 묵시문학의 기본적인 본문들에 올바로 주의를 기울이지 않았으며 그 본문들을 무시하거나 배제해 왔다.”4 이는 우리나라의 경우도 예외가 아니다. 요한 묵시록에 대한 관심은 이단과의 연계성으로 인해 터부시되는 경향이 있다. 그러나 종말론을 내세우는 교단들이 사회적 물의를 일으킬 때마다 이론적 배경이 되는 요한 묵시록을 더 이상 외면할 수 없는 것이 최근의 우리 사회 현실이다. 따라서 묵시록의 학문적 가치는 신앙인들의 실제 생활과 직결된다는 데 그 신학적 의의가 두드러진다. 신학의 학문적 의의가 실천 신앙에서 그 가치를 발휘한다고 했을 때 요한 묵시록만큼 그 비중이 큰 것도 많지 않다.
정리하면, 요한 묵시록은 양식과 내용상 초기 유다교의 묵시문학 전통 안에 서 있다. 여기서 특징적인 것은 상징 언어(짐승, 창녀, 기사 등), 상징 숫자(7, 666, 12, 4, 3½ 등), 그리고 환시가 매우 두드러진다는 사실이다. 하지만 묵시문학에 전형적이지 않은 다음 요소들이 각별히 관심을 끈다. ① (7,13-17과 17,7-18을 제외한) 환시들이 해석을 포함하고 있지 않은데, 이는 상징 언어에 대한 즉각적 이해가 전제되어 있는 듯이 보인다. 그래서 저자와 수신인들이 같은 문화권 출신이고, 개인적으로 잘 알고 있으며, 언어·모티브·표상들을 공유하고 있다고 추론할 수 있다. ② 저자는 차명의 권위자를 내세우지 않고 자신의 이름을 저자로 밝히고 있다. 또한 책은 봉인되지 않아야 하며(22,10), 그 메시지는 공동체들에 공개되어야 한다. 즉, 이 책은 그리스도의 권위와 그분의 예언자적 사자인 저자의 인격을 통해 신빙성을 얻고 있으며, 불안한 상황을 함께 겪고 있다는 사실이 저자가 공동체에 개입하는 것을 정당화한다.5 따라서 요한 묵시록은 결코 비밀스러운 책이 아니다. 당시 독자들은 이 책의 묵시문학적 상징 세계를 잘 알고 있었다. 그러므로 오늘날 우리가 요한 묵시록의 성과를 제대로 평가하려면 먼저 초대교회의 시대적 상황과 문화적 환경 등을 이해해야만 비로소 가능해진다고 하겠다.6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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