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격암유록>이 16세기 남사고의 작품이라고 하기엔 지나치게 현대어의 사용이 많고, 특히 성경구절1과 요한묵시록의 용어들2이 대거 등장하여 허춘회 씨의 고백이 있기 전부터 이 책은 위서라는 의심을 받아왔다. 그리고 위서가 정직하지 못한 책이며, 정직하지 못한 책에 진리가 있다는 것은 설득력을 갖기 어렵다는 게 통념이다.
그렇다면 성경은 어떠한가?
성서학자들은 2000년 전에는 자신이 존경하는 인물의 이름을 빌어서 책을 내는 것이 하나의 통상적인 관례라고 말한다. 그러나 이런 설명은 현대인의 관점에서 보면 그냥 위작이라고 하는 것보다 더 비겁하다. 그래서 성경무오설이 더욱더 견고해져야 했는지도 모른다. 절대적인 권위의 힘을 전제하지 않고서는 저자가 누구인지도 모르는 책을 진리라고 말하기 어렵지 않겠는가. 그래서 아직도 꾸란은 경전번역도 허락지 않는 것인가.
성경은 이미 2000년 동안 검증이 된 책이고, 격암유록은 이제 막 만들어져 기껏 50여 년밖에 안 지난 책이기에 비교할 수 없다고 말할 수도 있다. 그렇다면 진리란 세월에 의해 만들어지는, 푸코 식으로 말하면 지식의 고고학인 셈이다. 이렇게 되면 진리란 유용성과 권력에 의해 만들어지고 축적된다는 입장에 서게 된다.
아님, 성경은 인류 구원의 목적이 있지만 격암유록은 특정 교단의 사리사욕에 목적이 있었으니, 그 창작의도와 목적에서 차원이 다르다고 말하겠는가. 설령 그렇다 해도 그 동기의 순수함과 불순함에 대해 후대가 측정하기란 매우 애매하며, 사실은 진짜 그런지도 의심해 보아야 한다. 그럼, 이제 어쩔 것인가.
격암유록의 생성 과정은 사실상 한 교단이 탄생하고 유지되고 발전하는 과정에서 겪는 일반적인 현상일 수도 있다. 다만, 그 교단의 생명력에 의해 경전이 될 수도 위서가 될 수도 있다. 그래서 모든 종교는 사기라고 말하는지도 모르겠다. 그런데 여기서 사유를 중단할 수 없는 이유가 존재한다. 신앙이 우리 인간의 삶을 지옥 같은 현실에서 건져줄 마지막 카드라면? 그래서 인간 생존과 존재 이유의 첫 카드였던 종교가 사실은 마지막 한 장 남은 히든카드라면? 두렵지 않은가, 놓치고 있는 그 무엇이. ▣
- 예를 들어, ‘羅馬簞二’는 로마서 2장이며, ‘哥前’은 고린도전서를 한자로 표기한 것이다. [본문으로]
- 일례로,「요한묵시록」21장의 새 도성은 12대문으로 이루어진 구조이다. 그리고 성벽은 벽옥이고 도성의 거리는 온통 맑은 수정 같은 순금이며, 열 두 대문은 열 두 진주로 되어 있고 성벽의 주춧돌은 12가지 각각의 보석으로 꾸며져 있다. 이에 대응하는 구절이 『격암유록』,「生初之樂」에 있다. “금은보석으로 4천리 성을 쌓아 / 열두 대문을 밤낮으로 열어 놓고 (金築寶城四千里 十二門開晝夜通) 수정으로 만든 유리국에 금으로 만든 거리에서 사람들이 노래한다. (水晶造制琉璃國 金街路上歌人)” [본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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