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한 묵시록은 비서(秘書)다?
“이 봉인을 뜯고 두루마리를 펴기에 합당한 자 누구인가?”(묵시 5,2)
요한 묵시록에 의하면 두루마리를 펼 수 있는 자는 오로지 어린 양 한 분뿐인데, 이 두루마리는 무려 일곱 번이나 봉인되어 있다(묵시 5,1-5). 그렇다면 천상의 천사들도 펼 수 없고, 환시를 직접 겪고 있는 요한도 펼 수 없는 그 ‘두루마리’란 무엇인가?
교부들은 그 두루마리를 성경 전체라고 해석한다. 신약성경은 구약성경 없이 존재할 수 없으며, 구약성경 또한 신약성경 없이는 존재할 수 없다고 보기 때문이다. 그래서 “구약성경은 신약성경의 전령이고 휘장이며, 신약성경은 구약성경의 성취이고 밝힘”(아프링기우스, 프리마시우스)이라고 설명한다. 그럼으로써 “성경 전체를 문자적 의미와 더불어 영적 의미에 의해서도 해석할 수 있게 되었다”(오리게네스, 카이사리아의 안드레아스)1는 것이다.
이렇게 구약과 신약을 하나의 두루마리로 보는 성경 해석 입장은 요한 묵시록을 연구하는 데에도 대단히 중요한 열쇠를 제공한다. 따라서 오늘날 우리가 요한 묵시록의 봉인을 떼고자 한다면, 먼저 구약에서 표현된 유대 민족의 전통적인 정서와 세계관을 이해하고, 이후 신약에서 드러난 예수님의 부활과 재림의 의미를 이해해야 할 것이다. 그렇지 않다면, 즉 구약의 세계관 없이 묵시록을 순전히 미래에 대한 예언서로만 해석한다면, 묵시록은 현재 종교계에서 벌어지고 있는 일부 교단들의 혹세무민용 텍스트에서 벗어나지 못할 것이기 때문이다.
오늘날 우리나라에서 단군신화를 이용한 모티프로 현 시대 상황에 필요한 이야기를 만든다면, 굳이 등장인물이나 주요 사건에 대해 상세히 설명하지 않을 것이다. 이미 우리나라 독자에게는 곰이나 호랑이, 쑥이나 마늘이 이야기의 전달을 방해하는 요소가 되지 않기 때문이다. 오히려 기존 이미지에 대해 공동체가 합의하고 있는 해석이 있기에 공동체에 소속된 다수에게 전달하는 데 새로운 캐릭터보다 훨씬 유리하다. 특히나 그것이 공동체를 박해하는 이민족 지배층을 피해야 하는 상황이라면 지극히 당연한 서술방식이 될 것이다. 그렇게 이민족 지배자들의 눈을 피하면서 공동체에 희망을 전하는 방식이 묵시문학이다.
요한 묵시록의 저자는 자신을 요한이라고 부르지만(요묵 1,1; 1,4; 1,9; 22,8), 당시에는 문학작품을 과거의 중요한 인물에게 바치는 습관이 있었고, 특히 묵시문학 작품에는 더욱 그러했다. 따라서 요한 묵시록의 저자는 사도 요한도 아니고, 요한복음의 저자도 아닌, 스승 요한에게서 영감을 받은 ‘요한’으로 추정된다.2 그러나 당대에는 사도 요한의 작품으로 간주된 상황에 힘입어 요한 묵시록은 AD 120-150년 사이 전 교회에 유포되어 있었다. 이는 사도 요한의 저서라는 권위에 의해 그 가치를 더욱 갖게 되었다고 추론할 수 있다.3
따라서 요한 묵시록이 당대 유다 민족의 세계관을 표현하는 대중적인 방식이란 이해 하에 우리는 묵시록에 접근해야 한다. 다시 말해, 오늘날 우리에게 요한 묵시록은 이국적인 상징성과 다양한 해석의 가능성으로 인해 일반인은 접근하기 어려운 비서(秘書)처럼 여겨지나, 묵시록이 쓰인 당시에는 유대적 전통을 지닌 묵시문학이 상당히 대중적이었다는 것이다.
하인리히 크라프트(Heinrich Kraft)는 “우리가 묵시록을 큰 소리로 읽는다면 이 묵시록이 처음부터 공동체 모임에서 낭독하기 위한 것으로 정해져 있었다는 것을 알게 된다. 문장들의 화음은 이 의도적인 낭독이 우리가 성가음창을 할 때 받게 되는 그와 같은 인상을 불러일으킨다.”4라고 묵시록의 문체를 분석했다. 그러므로 오늘날 우리가 묵시록을 비밀스럽게 생각하여 계시 받았다고 자처하는 사람들의 해석에 의존한다면, 그것이야말로 성경을 우상화함으로써 묵시록의 본래 목적을 왜곡시키는 일이다. 그리고 이런 우상화가 하느님의 백성이 저지를 수 있는 가장 큰 악행임을 요한 묵시록에서는 반복적으로 강조하고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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