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늘은 맑고 높고 햇살은 청결하고 바람도 순결한데, 이런 자연이 태풍을 품고 있다니 이번 주말도 녹록지 않겠다. 코로나는 끝날 때까지 끝이 아니고, 새로운 전염병도 슬슬 시작되고 있고, 기후변화에 따른 재앙은 지금도 감당이 안 되는데 이게 시작이란다. 파키스탄 국토의 3분의 1이 폭우에 잠기는 걸 보면서 우리나라 폭우는 그나마 낫네 해야 하는 게 기후적 위안이라면 위안, 남의 불행을 나의 안도로 삼는 몹쓸 인간성, 그러나 어쩔 것인가.
정치 이슈로 가면 더 미친 것 같은 세상, 내가 잘되는 건 이미 포기했으니 네가 안 되는 걸로 목표를 바꾼 사람들의 목숨을 건 격투장. 우리 사회가 다른 분야는 일류인데 정치만 삼류라는 그런 얘길 꽤 오래전부터, 마치 기원이 모호한 오래된 경전 속 글귀처럼 구비문학으로 전해오는데, 이건 택도 없는 소리다. 정치가 곧 우리 사회의 현주소고 작금의 정치형태가 곧 우리 시민의식의 현 상태다.
적어도 투표권을 보통의 시민이 행사하는 민주사회에서 정치만 삼류라는, 정치인들만 사라지면 된다는, 이런 닭 잡아먹고 오리발 내미는 식의 사유는 집단적 핑계에 불과하다. 정치는 우리 사회의 집약적 상징이기에. 그래서 정치인의 청렴이 중요하고, 그래서 유명 정치인일수록 죄를 다루는 기준이 엄격해야 하고, 그래서 권력이 클수록 책임도 배가되는 건데, 왜냐면 상징이 무너지면 사회 전체가 무너지니까.
그러니까 말이다, 제발 말이야, 민주당은 이재명 의혹을 낱낱이 밝히자고 특검 주장하고, 국힘당은 김건희 의혹을 샅샅이 드러내자고 특검 주장하란 말이다. 그러지 않으면 우리 다 죽는 다고, 그래야 우리 사회의 구조적 문제를 이번 기회에 뜯어고친다고, 그래야 관행이란 이름으로 벌어지는 악행과 불법의 사슬을 끊을 수 있다고, 깨어있는 시민이라면 말이다.
민주당은 이재명을 통해 거듭나고 국힘당은 김건희를 통해 거듭나야 한다. 그들이 특별히 미워서가 아니다, 그들이 우리 시대의 상징이 되었기에 그들을 통과하지 않고는 이 시대가 지나갈 수 없어서 그런 것이다. 시대적 상징에 독이 묻으면 우리 사회는 그대로 독을 탄 성수를 나눠 마시며 자발적 좀비가 될 수밖에 없는 거다. 나치와 히틀러와 독일 국민의 관계처럼.
혐오가 지지층의 동력인데 어떻게 그걸 포기하냐고? 상대가 먼저 꿇지 않는데 어떻게 나만 자백하냐고? 그럼 지는 거라고? 그렇게 해서 이기면 뭐 하게? 다 죽어도 나만 살면 된다고? 오징어 게임도 최후의 승자는 생존하니 내가 최후의 승자가 되면 된다고?
웃기지 마라, 그 최후의 승자도 만신창이가 되지 않으면, 그래서 영혼을 탈탈 털리고 인간성이 말살되지 않으면 돈 가방을 차지 못하는 게 게임의 법칙이다. 이건 만고불변의 진리인데 새삼 증명이 필요한가? 내 칼에 내가 찔리고 나서야 알게 된다면 그건 너무 비극 아닌가?
그러니 제발 말이다, 국힘당은 김건희 특검을 발의하고 민주당은 이재명 특검을 발의하란 말이다. 그것만이 작금의 이 종말적 혼란을 파국에서 건지는 일이다. 그것만이 우리를 엄습해 오는 ‘힌남노’를 ‘한남노’로 읽는 사람들에게 혐오의 감정을 내려놓게 하고, 그것만이 앞으로 닥칠 세계적 악조건을 함께 넘어가게 할 수 있는 유일한 연대의 길이란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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