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이 다 그러면서, 사람들이 다 그러면서, “왜 나만 갖고 그래?” 이 유명한 문장을 남긴 사람은 지금 세상에 없지만, 이 말의 유용성은 점점 더 빛을 발하고 있다. 너라면 안 그럴 거 같아? 너나 나나 다 같은 욕망의 화신인데, 솔직히 말해 기회가 없어서 죄를 못 지은 거지, 너라고 별수 있어? 약자라서 법 앞에 납작 엎드려 산 걸 마치 양심 때문인 듯 포장하지 마, 그런 가식이 더 역겨워. 현 사회 우리가 마시는 공기는 이런 느낌?
우리 사회만 유독 가파른 변화의 소용돌이에 있는 것도 아니다. 전 세계가 새 판짜기에 돌입했으며, 그 바람에 기존 질서의 전복이 여기저기서 일어나는 중이다. 명분 따위 개나 줘버려, 이제부턴 가면 벗고 쌩얼굴로 노는 거야, 어차피 대중도 예전의 대중이 아니라서 위선 떠는 걸 더 싫어해, 그러니 시답잖은 외교적 서사와 겉치레는 때려치우자고. 러시아 보면 몰라? 러시아를 대하는 세계인들의 태도를 보면 몰라? 당장 우리나라만 해도 전쟁이 길어져서 빵값 오르니까 짜증 나잖아, 안 그래?
그럴지도, 아니 어차피 그런 거였다. 내 안위를 위협하는 놈이 내겐 악마고, 내 즐거움을 빼앗아 가는 놈이 내겐 사탄 아닌가. 산다는 건 끊임없는 투쟁의 연속이고 승자독식의 사회는 인간의 본성인데, 누가 감히 이를 거스르려 하는가.
그렇다면 내로남불은 그닥 욕먹을 일이 아니다. 인간의 팔이 밖으로 굽지 않는 한 내 편은 특별히 더 소중한 존재고, 내게 이익을 주는 사람이 내겐 의인이고 은인이니까. 그래서 왜 나만 갖고 그러냐고 항변하는 것도 이해된다. 그리고 이왕 이해하자고 맘먹으면, 죄는 자백할 때 비로소 죄로 인식되는 거니까 대법원판결까지 버티는 게 장땡이란 생각도 까짓거 이해 못할 일 아니다.
죄의 성립이 행위에 있지 않고 타인에게 문제의 행위를 들키느냐에 있다는데 뭐 어쩔 것인가. 그렇다는데, 인간의 본성은 그런 거라고 유명인들이 권력자들이 윤리의 지표를 세우는데 뭐 어쩔 것인가. 음주운전이 나쁜 게 아니라 단속에 걸린 게 재수 없는 거라고, 폭력이 나쁜 게 아니라 그 사실이 알려진 게 운이 없는 거라고, 인간은 누구나 죄를 짓고 산다고. 그렇다고 하는데 일개 무지렁이 백성이 뭐 어쩔 것인가.
그런데 어쩌면 그렇게 조커의 평준화가 이루어지는 범죄적 지능이 높은 사회가 지금의 현실에선 차라리 더 나을 수 있다. 지금 같은 파괴의 시대가 빨리 지나가야 그 끝에서 새로운 시대가 열리기 때문이다. 힌두교 신화처럼 창조는 파괴 후에 시작되기에, 기독교 신화처럼 새 하늘 새 땅은 종말 이후에 찾아오기에, 각 개인은 각자도생하며 시류에 휘말리지 않으면서 자신의 영혼을 지키는 것, 그 외에 우리가 무엇을 더 할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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