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장이 빙글빙글 도는 증상이 멈추지 않아 구토를 해가며 부축을 받아 간신히 응급실에 갔다. 이 검사 저 검사를 받는 동안 눈을 계속 감고 있었다. 어지러워서, 이 현상을 의사는 오른뇌와 왼뇌의 정보가 비대칭이라 그렇단다. 이유는 오른뇌와 연결된 귀 안쪽 중심을 잡는 영역에 염증이 생겨서, 원인은 모른단다, 아직 밝혀진 바 없단다. 죽을 것처럼 괴로웠지만 들어보니 죽을 병은 아니었다.
응급실에 있는 동안 일 관계로 연락이 와서 지인 2명에게 알렸다, 지금 못 일어난다고. 이석증으로 알려진 병과 드러나는 증상은 같은데 의사는 그거 아니고 현훈증이라고 했다. 나중에 찾아보니 이석증의 원래 명칭이 양성 발작성 체위성 현훈이다. 그런데 내 경우는 이석에 문제가 있는 것은 아니고 그 부근에 염증이 생긴 것이니 이석증이 아니라고 한 것 같다.
평소에도 멀미가 심하고 구토증이 일상인 내게 현훈증은 차라리 죽여줘, 이런 생각이 들 정도의 공포였다. 앉았다 일어나도 구토, 누웠다 일어나도 구토, 침상에 누워서 이동해도 구토, 휠체어로 앉아서 이동해도 구토, 비닐봉지를 손에 꼭 쥐고 위액까지 토해서 목구멍이 아팠다. 이 증상이 사라지면 기쁘겠지, 그런 생각을 했지만 일단은 어지럼증이 압도적이라 눈을 감고 링거를 맞으면서 가만히 누워 있었다. 옆의 옆 침상에서 어르신이 떨어졌다고 간호사들의 비명이 들려왔다. 이 응급실은 어지럼증 환자들이 모인 방인가 보다.
탈진한 상태라 링거를 맞았고 의사 진료 후 안정제를 또 맞았다. 그 사이 검사 결과도 나왔다. 다행이 빈혈 말고 다른 병은 없단다. 엄청 뽑아간 피의 양에 비해 소소한 결과였다. 흉부 엑스레이는 코로나 때문에 누구나 다 찍어야 했는데 다행이 폐도 멀쩡하단다. 혈압이 평소보다 높았지만 그건 내 상태가 상태니만큼 긴장해서? 어쨌든 간호사는 혈압 정상입니다, 그랬다. 어지러워 죽을 지경이었지만 그래도 큰병이 아니란 사실에 나도 보호자도 안심했다. 뇌졸중이나 뇌출혈을 의심하는 질문을 응급실 도착부터 이비인후과 진료받을 때까지 반복해서 받은 터라 더럭 겁을 먹은 상태였다.
그렇지, 나라고 큰병 걸리지 말란 법 없지, 이미 내 주변에서도 4-50대에 죽은 사람이 여럿 있지 않나, 물론 그전에 죽은 사람도 여럿 있고. 그리고 나도 죽겠지, 언제인지 몰라서 그렇지, 더구나 나는 내가 늙어간다는 게 무척이나 두려운 인간 아닌가. 그래서 늙기 전에 죽여 주세요, 그런 기도도 해온 인간이다. 그런데 막상 이대로 죽는다면 어떨까, 그런 생각을 하니 죽음은 참 웬만하지 않다는 생각이 들었다. 지금 출간 준비 중인 성경동화가 유작이 되면 좀 팔리려나? 그런 생각도 잠깐 했다. 근데 나 죽고 잘 팔리면 뭐해, 이렇게 결론 짓고, 몸이 정상이 되면 내 삶에 대해 다시 생각해보자 정도로 죽음에 대한 단상을 마감했다. 어지러워서 더 생각할 여유도 없었다.
아마도 난 더 살고 싶은가 보다. 삶이 비루하고 허접해서 견딜 수 없는 것도 진심이다. 그래도 아직은 선선한 바람도, 그 바람에 바스스 움직이는 나뭇잎도, 그 나뭇잎에 떨어지는 빗소리도, 그 비가 그친 후 반짝 드는 햇살도, 아직은 놓치기 싫은 모양이다. 아름답지 않은 것도 아름답게 보일 정도가 돼야 비로소 내가 진짜 어른이 된 게 아닐까, 적어도 이 나이에 어른도 못 돼 보고 죽는 것은 이번 생에 주어진 내 과제가 아닌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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