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관계가 어렵다. 뭐 이렇게 열라 어려운 게 세상에 존재할까, 싶다. 어릴 때는 내 세계 안에서 아무 생각 없이 지냈던 터라, 그 무념무상의 어린 아이는 관계가 어려운지 쉬운지 아주 기초적인 개념조차 없었다. 남에게 해를 입히지 말아야지, 그것만 지키면 별다른 문제가 없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학교 선생님과 손잡고 식당 가고 물건 사러 다녀도 별로 불편하지도, 그렇다고 대단히 좋지도 않은, 그냥 모두가 다 그런 줄 알았던 진짜로 생각 없는 아이였다. 그렇게 오는 사람 막지 않고 가는 사람 잡지 않는 마인드는 언제 형성됐는지도 모르게 나의 정체성이 돼 버렸다. 내게는 특정 사람에 대해 그닥 좋은 감정도 그닥 나쁜 감정도 없었던 것이다. 사람이니까 그저 누구든 사이 좋게 지내면 그만이었다. 어차피 다 같은 사람이니까.
그런데 10년 전부터 관계에 대해 지나치게 생각이 많아졌다. 가까운 사람에게 좋은 일을 말하면 기뻐하는 대신 질투하는구나, 그것도 40이 넘어서야 알았다. 그전까진 질투는 그 사람 개인의 문제라고 생각했다. 선천적으로 욕심이 많거나 후천적으로 안 좋은 경험을 해서 트라우마가 생겼거나, 그러나 지금은 좋은 일을 나눌 수 있는 건 부모 외에 별로 없다는 걸 안다. 그나마 부모도 그것이 자신의 자랑이 될 때 기뻐해 주는 것이다. 그래서 비로소 깨달은 게 내 주변엔 힘든 사람들이 많다는 거, 다들 사는 게 힘들구나, 그래서 마음의 여유가 없구나, 그렇다면 질투는 인간의 종특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든다. 어떨 때? 나와 관계를 맺었을 때.
나와 상관없는 사람의 재능과 성공은 신기하고 대단한 일이지만, 나와 관계를 맺고 있는 사람은 그 사람의 단점을 너무도 잘 아는 탓에 자신과 비교가 되고 그래서 시기심이 생긴다. 내가 쟤보다 더 인성 좋은데 왜 쟤는 저 따위 인성에 재능 폭발이지? 이런 마음... 내가 걔보다 집안만 더 좋았더라면, 공부는 내가 더 잘했는데, 이런 마음... 내가 얘보다 더 노력해서 사는데, 얘는 외모 잘나고 운이 좋아서, 이런 마음... 비교하지 않으면 사실 아무것도 아닌 그런 감정들.
그런데 나는 왜 비교의식이 없을까? 나는 그냥 좋더라, 예쁜 애가 좋고 상냥한 애가 좋고 재능 있는 애가 좋고, 뭔가 남들보다 한 구석 잘 타고난 사람은 일단 보기에 좋다. 그리고 세상에 공짜는 없다고, 재능 한 스푼 더 있는 사람은 사회성이든 집안이든 어디서 그 한 스푼이 부족하기 마련이다. 그래서 나는 사람들이 자신의 타고난 장점을 마음껏 향유했음 좋겠다. 그런 사람이 아는 사람이면 더 좋다, 그래서 한때 알았던 사람의 성공 소식이 들려오면 신기하고 대견하다. 잘 살고 있네, 그런 생각도 들고... 아마도 나는 관계성이 약해서 그런지도 모르겠다. 나르시시즘이 강해서 타인의 행복도 불행도 관조적으로 보고 있다? 그러니까 관객 같은 마음?
나는 한때 로또 선물을 잘했다. 로또가 비용 대비 즐거움을 많이 주는 물건이라, 선물에 로또를 끼워주면 상대가 좋아했다. 그런데 누가 그러더라, 그러다가 당첨되면 어쩌냐고. 그럼 대박이지 뭐가 문제? 고맙다고 내게 사례금이라도 주면 나도 이익이고, 안 줘도 내 돈 나가는 건 아니지 않은가! 상대가 불행해야 내가 행복한 그 관계의 끈적함을 나는 잘 모르겠다. 사람들은 왜 그토록 누군가와 묶어서 자신을 볼까? 비교 대상이 없으면 불안한가?
사람들, 아주 많은 사람들이 이 관계적 사고에서 벗어났음 좋겠다. 나는 나일 뿐, 못 생겨도 늙어도 돈 없어도 뚱뚱해도, 그래도 나는 내가 좋은 거 아닌지... 이만큼 살아오느라 고생한 나의 어리석음이 짠할 때도 있지만, 그래서 더욱 타인의 삶과 바꿀 수 없지 않을까? 그나마 그래도 가장 많이 아는 존재가 '나'인데 이제와서 왜 누구와 비교를... 그러나 나는 생각보다 오래 산 탓에 이제 타인이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 짐작하고 선입견 갖는 나이가 돼 버렸다. 상대의 결함을 눈치채는 내가 즐겁지 않고, 상대의 단점에 화 대신 슬픔을 느끼는 것이 때때로 교만임을 알지만, 이토록 비루한 삶에서 작은 무게마저 지지 않으려 한다면 그것도 유치하고 추하겠지, 그냥 그렇게 받아들이고 있다. 자뻑 작렬하는 닫힌 공간에서, 위선은 역겨워도 위악은 긍휼하지, 그렇게 그냥 수용하고 있다, 지금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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