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계인이 된다는 것

공정이 뭐? 정의의 이름으로 널 용서하지 않겠다!

아난존 2021. 7. 8. 13:58

 

베이컨이 우상론에서 말했듯 우린 편견에서 자유롭지 않다. 인간이란 관점의 제약(종족의 우상)과 개인의 경험치에 제한받는 인식(동굴의 우상)은 우리의 태생적 한계를 인정할 수밖에 없는 조건이고, 사유의 관성화를 유도하는 언어의 사용(시장의 우상)과 권력과 권위에 복종하는 습성(극장의 우상)은 인간이 사회적 동물로서 익힌 생존전략이기에, 여기서 벗어난다는 것은 되려 손해를 감수하는 일이다. 당장 나의 허물을 덮어줄 내 가족, 내 진영이 없는 사람들에게 세상이 얼마나 냉정한지 우리는 잘 알고 있다.

 

이처럼 우상론을 기본적으로 장착한 상황에서 공정이란 서로의 허물을 덮어줄 관계를 공고히 하는 단계를 말한다. 그래서 우린 유명한 3대 연고주의가 발달했다. 혈연, 지연, 학연. 못 믿을 놈 천지인 세상에서 그나마 연고주의가 안전핀의 역할을 해주는 것이다. 내부의 적이 더 무서운 적이긴 하나 그것도 일단은 내부에 착지하고 나서다. 울타리를 견고하게 세우고 외부의 침투를 막아내는 것, 우리 사회는 이를 공정이라 부른다. 물론 우리 사회만 그런 건 아니다. 다만 평균 학력이 높고 경쟁이 치열하다 보니 그만큼 공정에 대한 갈망도 큰 것이다. 울타리 안으로 들어가기 위해 내가 얼마나 노력했는데, 또는 울타리 밖으로 안 밀려나려고 내가 얼마나 애썼는데, 그러니 이런 보상심리를 충족시켜 주지 않는 것은 모두 불공정이다. 정의의 이름으로 너를 용서하지 않겠다! 분노가 폭발하는 지점이다.

 

울타리를 없애는 것이 인간의 조건상 불가능한 거라면 적어도 울타리 문을 자주 열어 놓아야 한다. 쉽게 오고 갈 수 있도록, 그래야 공동체 구성원으로서의 연대감이 생기니까. 그게 싫다면 최소 울타리 안과 밖의 환경을 유사하게 만들면 된다. 그것이 서로서로 덜 피곤하게 사는 길이고 동시에 안전이 보장되는 길이니까. 울타리 안에 꽁꽁 자리 잡고 내부자들끼리 모여 살면 풍요롭고 안전할 것이란 생각은 판타지다. 울타리 밖의 환경이 열악할수록 언제 울타리가 무너질지 모르는데, 그거야말로 불안과 위협을 일상화하는 일이다. 인간에게 타인을 위해 희생하란 명제는 인간의 종특상 과도한 요구이다. 남에게든 자신에게든 그렇게 무리한 걸 바라선 안 된다. 그러나 타인이 안전해야 나도 안전하단 전제는 합리적 요청이다. 분노와 혐오는 공기 같아서 나라고 그걸 마시지 않을 재주가 없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