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계인이 된다는 것

자이가르닉 효과와 음모론의 관계 – 세월호, 천안함, 손정민

아난존 2021. 6. 18. 07:19

 

왜 어떤 기억은 특히 더 안 잊힐까 궁금해서 찾아보니 그런 걸 자이가르닉 효과라고 한단다. 미완성 효과, 그러니까 실수나 미해결 과제가 더 많이 기억에 남는 것을 말한다. 관계든 일이든 줄 거 주고 받을 거 받아야 깔끔하게 잊을 수 있는데, 마무리가 되지 못한 것들은 기억의 저장소에서 삭제 버튼을 누를 수가 없는 것이다. 그래서 은혜도 갚아야 맛이고 복수도 당한 만큼 해줘야 맘 편한 것인가 보다. 과제 완수형의 인간들.

 

유명인 중에서도 요절하거나 자살한 사람이 대중에게 더 잊히지 않는 이유도 미완성 효과라고 하겠다. 예수를 얘기할 때도 그가 30대에 죽임을 당했다는 게 맘이 쓰이는 것처럼. 확실히 같은 성인이라도 천수를 다한 붓다에 비해 예수의 삶이 짧았던 만큼 예수의 죽음이 인류에게 더 강렬히 기억된다. 첫사랑이 이루어지면 안 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이룰 수 없어야 애틋하게 추억으로 남는 건데 덜컥 첫사랑과 결혼이라도 해버리면 사랑은 현실이 돼버린다. 그때부터 어린 왕자의 세계는 잔혹 동화로 변질된다. 어린아이에게 지구 환경은 위험하고 짐승과는 친구가 될 수 없으며 사막에서 만난 낯선 사람을 신뢰했다간 큰일 당하기 쉽다.

 

그렇게 잔혹 동화의 주인공이 된 어린 왕자는 자신에게 불친절한 세상을 이해하지 못하므로 음모론에 빠진다. 자신의 별인 소행성 B612를 빼앗기 위해 장미를 첩자로 보낸 게 아닐까? 장미 뒤에 분명 배후가 있을 거야, 그리고 내가 소행성 B612로 돌아가지 못하게 사막에 비행사를 보내서 내 일거수일투족을 배후 세력에게 보고할지 몰라. 그럴 수 있다, 현실이 고달플수록 배후에 대한 미움이 커지니까. 지금의 이 고된 삶이 내 잘못은 아니다, 이건 어디까지나 어둡고 음침하며 탐욕스러운 배후가 꾸민 모략이다.

 

음모론은 인과율이 명확하지 않고 결과에 수긍할 수 없을 때 성행한다. 세월호가 그렇고 천안함이 그렇다. 최근 한강 대학생 손정민 사건에 많은 이들이 분노하는 지점도 마찬가지다. 조사 주체 세력이 뭔가를 숨긴다고 느껴지면, 오히려 그 미완성 효과로 대중은 그 사건을 더 오래 기억하게 된다. 그리고 이때의 자이가르닉 효과는 불신에 기초한 부정적인 느낌으로 남는다, 찝찝함과 불편함과 불쾌함 같은. 게다가 개개인의 정보 접근이 선택적으로 이루어지다 보니 개인 각자는 자신이 접한 정보를 기준으로 판단할 수밖에 없다. 그래서 정보의 접촉면이 다른 쪽을 향해 무차별적으로 조롱하고 희화화하는 사회 분위기가 당연하게 자리 잡았다. 이 상황 어쩔~

 

더구나 외교적 수사가 일상어가 된 오늘날 다수의 국민은 정치인처럼 정무적 선택이란 걸 한다. 그리고 어제의 적이 오늘의 동지가 되는 이유는 오로지 딱 하나, 이해관계이다. 이렇게 피곤하게 사는 게 정말 맞는 걸까 싶을 정도로 지금의 우리는 서로서로 자신의 속내를 들키지 않도록 감추려고 애쓴다. 그 결과 포커페이스 정도를 넘어 웃는 얼굴도 믿지 못하는 세상이 되었다. 그래서 상대방의 진심을 꿰뚫어 보는 방법들이 베스트셀러가 된다. 그런데 아이러니한 건 그렇게 조심을 하는데도 사기꾼들 천지다. 오늘도 저금리 대출 권유 문자는 모두 보이스피싱이란 기사가 올라왔다.

 

놀라운 세상이다. 촛불집회 때 구호가 거짓은 진실을 이길 수 없다, 였다. 세상이 정말 그렇게 돌아간다고 믿어서라기보단 그렇게 믿고 싶었던 사람들이 토요일마다 꾸역꾸역 광화문에 모였다. 그러나 어른인 우리는 안다. 어떤 이에게 거짓은 어떤 이에겐 진실이란 사실을, 더 나아가 꼼꼼하게 짜인 거짓이 허술한 진실을 쉽게 이긴다는 것을, 그리고 가끔은 허술한 거짓도 탄탄한 진실을 눌러버린다는 것을. 그래서 우리 보통 사람들은 자기 밥그릇 챙기는 게 지상최대의 현명함이 되어버렸다. 음모론이 일상화된 사회에선 이용당하지 않고 사는 것만도 벅찬데 어쩌란 말이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