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계인이 된다는 것

매드몬스터가 뭐? 가상의 세계, 그 믿음의 공간

아난존 2021. 5. 11. 15:19

 

부캐, 부차 캐릭터란 의미로 본캐와 구분되는, 그래서 또 다른 내가 뜨는 시대, 이 정도만 되도 그러려니 한다. 이보다 한발 더 나아간 펭수는 탈인형 펭귄이 실존적 존재라고 암묵적으로 약속된 세계 안에서 움직인다. 그래서 펭수는 국회 청문회에 나올 수 없다. 펭수의 세계관을 지켜야 하므로, 여기까지도 그럴 수 있겠다 싶다. 그런데 이번엔 여기서 한발 더 나아갔다.

 

매드몬스터, 두 개그맨의 유튜브 세계가 현실의 세계로 넘어왔다. 2D3D 세상으로 왔는데 등장 캐릭터 중 아무도 이를 문제 삼지 않았던 웹툰이 있었다. 종잇장 모양의 주인공은 완벽하고 인기 좋은 남학생으로 혼자만 그림체가 다르다. 이런 의도적인 균열이 재미있다. 형식 파괴의 쾌감은 일탈이 주는 해방감으로 지루한 상식을 아무렇지 않게 툭툭 건드려 유쾌함을 준다.

 

그런데 유튜브에서 얼굴 필터를 사용하는 매드몬스터는 가상의 세계가 현실로 넘어올 때 문제가 생긴다. 가상이 어떻게 실재가 되는지를 보여준 펭수는 화면 밖의 모습을 절대 보여주지 않는다. 그래서 펭수를 연기하는 인물이 누구인지 실체가 밝혀졌지만 이를 공론화하지 않는다. 펭수의 세계관을 지켜주기로 합의가 된 상태이므로.

 

그렇다면 얼굴 필터를 사용하는 매드몬스터는 어떻게 가상의 인물이 현실 세계에 자연스럽게 침투할 수 있었을까? 일단 마스크를 벗지 않는 것, 이건 코로나 상황인 만큼 의외로 간단하다. 그다음 현실 인간들이 적극 이 세계에 동조하는 것, 이건 동조 세력이 많을수록 가능하다. 그리고 매드몬스터는 몇 개월 만에 이를 해냈다. 라디오 프로에 나가 인터뷰를 하고 각종 커뮤니티에서 이를 받아준다.

 

그룹 매드몬스터의 싱글 앨범인 내 루돌프가 유튜브 공개 24시간 만에 100만 조회수를 돌파했고, 멜론, 벅스, 지니뮤직 등 음원차트 진입에도 성공했다. 나무위키에서는 매드몬스터를 개그맨 본명이 아닌 인기 아이돌 가수 탄과 제이호라는 인물로 설정해놨다. 이 정도로 가상과 현실의 벽을 넘나들 수 있다면 무엇이 진짜인지는 이제 의미가 없다.

 

인터넷의 발달로 가상의 세계가 점점 팽창하는 요즘 진실과 진정성의 문제가 달라지고 있다. 진심의 정도가 진정성이라면 가상 캐릭터 역시 진실이 될 수 있다. 종교의 세계는 그 기원부터가 사실의 영역이 아니라 믿음의 영역 아니었나. 믿음으로 현실을 바꾸는 거, 그게 종교의 세계관이다. 내가 절대자에게 선택받았다는 믿음이 자신을 바꾸는 힘이 된다. 그런 사람들이 많이 모이면 세상을 움직인다. 관념론이 사라지지 않는 이유이다.

 

오늘날 이런 믿음의 세계는 금융 경제의 세계에서 가장 강렬하게 나타난다. 그림 하나가 수십억, 수백억 하는 것도 놀라운데 세계에서 가장 비싼 그림들은 천억 단위이다. 이때의 화폐 가치는 믿음의 순도를 측정하는 기준이다. 그림의 가치를 신앙으로 승화시킨 금융 경제, 따라서 화폐를 기계로 찍어내는 시대엔 공인된 화폐를 가진 나라가 신들의 나라이다. 믿음을 생산하고 유통할 수 있으니까.

 

현재 세계는 코로나 위기, 환경 위기, 각종 이권을 둘러싼 적대적 대립으로 위기 만발이다. 그리고 이런 위기 국면에선 공동체 구성원들이 단합하고 공조하고 그럴 것 같은데, 실상은 집값 폭등, 주가 폭등, 각종 가상화폐 폭등으로 부익부 빈익빈의 양극화가 극단적으로 심화되고 있다. 참 놀라운 일이다. 다 같이 죽을지도 모르는데, 일단 지금 당장 나는 죽지 않을 거란 믿음이 밑바닥의 탐심까지 끌어올리고 있다.

 

몇몇 투기 세력에 놀아난 다수의 부화뇌동이란 진단은 옛말이다. 배울 만큼 배운 사람이 다수인 사회에서 그런 주장은 진부하다. 하루에도 몇 차례씩 갑을 관계가 뒤집히는 사회에서 그런 비판은 어불성설이다. 워렌 버핏의 동향이 일일이 기사화되고, 엘런 머스크의 말 한마디에 코인이 날뛰는데, 이게 몇몇 투기 세력의 농간 때문일까. 대학마다 있는 투자동아리는 건실한 기업에 관한 공부만 할까. 영끌(영혼까지 끌어올린 대출 투자)의 조바심과 초조함을 비난하고 싶진 않다.

 

그러나 다단계에 한 번이라도 끌려가 본 사람은 안다. 이 시스템이 결국은 막차 타는 사람들의 피해를 전제하고 있음을. 내 밑으로 사람을 끌고 오지 않으면 수익이 나지 않는 구조, 이건 내 물건만 사면 그만인 시장 구조와 확연히 다르다. 그래서 다단계 회원들은 서로 친절하고 살갑고 긍정적이다. 인간이 곧 돈이므로. 이게 꼭 전도 열심히 하는 교단과 흡사하다. 내 믿음만으론 부족하다. 다른 사람의 믿음 위에서 내 믿음은 돈이 된다.

 

너나 나나 배울 만큼 배웠고 알 만큼 안다. 그러니 가상의 세계를 적극적으로 현실화하는 데 동참할 수 있다. 모르고 속으면 사기지만 알면서 속아주면 유희니까. 지금 현실 세계가 위태롭다는 건 세상 눈치 없는 사람도 눈치챌 만큼 지구 곳곳이 위기고 시도 때도 없이 재난이기에 그렇다. 그리고 돈은 몰리는 데만 몰린다. 조 단위 억 단위가 일상화된 사회, 이대로 화폐 가치가 계속 하락한다면 세상은 부루마블의 세계가 될 것이다. 숫자만 있고 실물은 없는, 그리고 이는 실물 없이도 믿음으로 지탱되는 종교의 세계와 다르지 않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