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계인이 된다는 것

내 안의 동물농장

아난존 2021. 8. 4. 03:50

 

 

과거엔 동물농장이 집단으로 형성됐다면 지금은 각 개인의 내부에 동물농장이 있다. 독재자 따로 있고 모략가 따로 있고 무지렁이 백성 따로 있는 게 아니라, 내 안의 자아 중 독재자도 있고 모략가도 있고 백성도 있는 탓에 자아분열을 일으킨다. 각자 많이 배우고 다 같이 똑똑해진 덕에 너도나도 걸려버린 정체성의 분열, 하나의 계급으로 수렴되지 않는 계급성, 평등이 이루어낸 획일적 사유, 자유가 이루어낸 품위와 맞바꾼 욕망, 연대라는 이름의 전체주의적 폭력, 이해관계 앞에서 기꺼이 수용되는 자발적 불의 등등.

 

조지 오웰은 경이로운 작가이다. 오웰만큼 인간의 속성을 적확히 꿰뚫어 보고 그것을 제대로 형상화한 소설가도 없다. 그래서 ‘1984동물농장은 전체주의 사회를 이해하는 데 교과서가 되었다. 그런데 오늘날 한국 사회는 그때보다 우리 인간이 더 다채로워지고 더 난해해졌다는 특징이 있다. 그러니까 머리를 쓰고 남을 속이는 사람들이 다수가 된 것이다. 그러니 아무리 백성은 개·돼지라고 하나로 퉁쳐봐야 개인의 욕망을 무슨 수로 막을 것이며, 또는 막아도 되는 건지, 하는 문제에 봉착한다. 짓밟히는 백성이 되느니 차라리 내가 독재자가 되고 모략가가 되겠다는 사람들로 넘쳐나는 세상. 그런데 남도 나 정도는 영악하니 어쩔 것인가, 응당 여기저기서 분노가 조절되지 않아 폭발하는 굉음이 잇따른다. 반대로 분노의 굉음을 안으로 삭이는 사람들은 우울증이란 또 다른 복병이 기다린다.

 

도쿄올림픽 양궁 3관왕 안산 선수를 둘러싼 논란도 그렇다. 하계올림픽사상 한국 첫 3관왕이란 위업을 달성했는데, 엉뚱하게도 세월호 배지를 단 페미니스트로 왈가왈부 소동이 났다. 개인 SNS상에서 벌어진 해프닝, 그러니까 그냥 모르고 넘어갔거나 가볍게 지나갔거나 했을 법한 일을 굳이 언론이 주목하고 정치권이 크게 키웠다. ? 대선판이니까! 여전히 국민을 백성이라 여기는 일부 언론과 일부 정치권은 티끌만한 기회도 놓치지 않고 태풍처럼 싸움을 몰아붙인다. ? 백성을 미혹하려고, 백성은 어리석어서 부분 진실과 전체 진실을 분별하지 못하니까. 그런데 이제 한국의 국민은 벌써 시민을 건너뛰고, 각자 정치꾼이 다 된 덕에 언론이든 정치권이든 그들을 공인된 양치기 늑대 소년 정도로 생각한다. 그래서 진영을 선택한 유권자들에 의해 뻔히 소모적인 이슈가 댓글로, 조회 수로 확산돼 버린다. 부분 진실도 팩트는 팩트니까, 중요한 건 전투에서 이기는 거니까, 상대에게 타격을 입히는 거라면 무엇이든 가리지 않고 거침없이 전장에 뛰어든다. ? 전쟁에선 승자가 강자니까.

 

인생을 전쟁이라 규정하고 매일매일의 삶을 전투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에게 맥락에 충실한 팩트는 중요치 않다. 이기기 위해서 쓰는 모략은 뛰어난 전략이며, 이길 수만 있다면 탁월한 계략꾼이 유능한 지도자이며 참모니까. 삶이 전쟁인데 생존을 위해서, 또는 승리를 위해서 뭔들 못할까. 그래서 정의를 쉴 새 없이 부르짖는 자도 진영 안에선 거짓말이 계략이고 사기가 전략이다. 거짓말인지 사기인지 몰라서가 아니라, 내가 속한 또는 내가 선택한 진영을 위해서라면 기꺼이 이 한 몸 버릴 수 있다는 거룩한 사명감이 보인다. 그래서 비장미마저 느껴진다. 이로 인해 점점 서로에 대한 불신의 벽이 높아지고 살기가 퍽퍽해진다 해도 그들을 말릴 수 없다. 삶이 전쟁인데, 총탄이 빗발치는데, 남을 안 죽이면 내가 죽는데, 그렇게 믿고 있는 신도들을 무슨 말로 설득할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