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통과 관계

근대의 종말을 고한 트럼프

아난존 2019. 3. 13. 06:50




트럼프의 등장으로 세계사의 전환이 가시적으로 이뤄지고 있다는 점에서 그는 21세기 가장 주시해야 할 인물이다. 영국의 브렉시트 결정이 근대의 종말을 알리는 전조였다면 트럼프의 미국 대통령 당선은 21세기가 20세기와는 확연히 다른 시대라는 것을 당당하게 알렸다.

 

감 좋고 눈치 빠른 학자들은 20세기 후반부터 근대의 종말과 탈근대의 시작을 주장했지만, 21세기 초반의 오바마도 흑인 혼혈이란 비주얼과 달리 교양과 계몽을 전면에 앞세운 대단히 근대적인 인간이었다. 하버드대 로스쿨 법학박사답게 그는 기존의 국제 질서를 존중했고 자유와 평등, 인권을 최고의 가치로 내세웠다.

 

개인의 자율적 선택을 최대한 보장하고, 인간 간의 수평적 관계를 지향하며, 인간의 존엄성을 지키는 것, 이게 근대정신인 건 맞지만, 다만 영역별로 그 울타리가 가차 없이 견고하다는 거, 그걸 우린 알면서도 모른 척해왔다.

 

백인과 유색인이 있으면 백인에게만, 백인끼리 있으면 남성에게만, 백인 남성끼리 있으면 부자에게만, 백인 부자 남성끼리 있으면 그중 집안이나 학벌 등 사회적 지위가 높은 사람에게만, 이렇게 저렇게 해서 둘만 남아도 그중 조금이라도 더 권력자에게 자유와 평등의 인권을 독점시키는 것, 그것이 근대의 정의였다. 어떤 형태로든 울타리를 절대 없애지 않는 것, 그런데 아닌 척하는 것, 그것이 근대적 선이었다.

 

그런데 이런 포장에 균열이 오기 시작했다. 그래서 근대의 총아인 교양, 즉 귀족의 혈통주의를 부르주아가 대체하기 위해 강조해온 교양이 무너지면서, 배타적 이기주의를 당당하게 외치는 시대가 온 것이다. 트럼프가 장사치라 그렇다고? 글쎄, 상도덕 없는 그에게 협상의 기술이 있다고? 그럴 리가, 그는 그냥 교양의 가증스러움에 지친 사람들에게 대리만족을 주는 상징일 뿐이다.

 

이렇게 근대가 가고 있는 것만은 확실한데, 그래서 교양의 위선을 지적하는 소리가 다채롭게 울리고 있는 것은 알겠는데, 그래서 어디로 가고 있는지, 아니면 어디로 갈 수 있는지, 그것이 참 어렵고 두렵다. 더 나빠지면 어쩌지 하는 불안감, 종국에는 인공지능에 기대야 하는 인성이라면 무엇이 우릴 인간답다고 할 수 있는 걸까, 이런 의구심마저 기우가 되는 세상에서 어떻게 살아야 하는 것인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