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스뵈이다 35회에 정우성이 출연했다. 세월호 영화 내레이션으로 정치적 커밍아웃을 했고, 제주도 예멘 난민 발언으로 궁지에 몰리기도 했던 정우성이 다스뵈이다에서 김어준과 브로맨스를 보여줬다. 김어준을 형이라고 부르는 정우성의 모습이, 그런 정우성이 무척 고마운 김어준의 태도가, 새로운 형태의 감동을 선사했다.
인지도 높은 연예인이 정치색을 드러내는 것을 불편해하는 우리 사회에서, 톱스타인 정우성의 정치적 발언은 그가 배우이기 전에 국민이라고 말하는 순간 초당적인 의미로 전달됐다. 배우 정우성과 인간 정우성을 구분할 줄 아는 그는, 가방끈이 짧다는 유아틱한 인신공격이 민망하게도, 대단히 지적인 사람이다. 배우 정우성이 얻은 것을 인간 정우성이 잃는다 해도, 그간 모든 걸 다 얻었는데 정당한 일을 하다가 잃는다면 억울할 게 뭐가 있냐고 그는 말한다. 참 정의롭게도 스마트한 사유이다.
김어준이 바꿔 놓은 세상에 대해 잘 모르거나, 알고 싶지 않은 사람들 중엔 가방끈 긴 사람들이 많다. 내세울 게 가방끈밖에 없는 사람들이, 그 가방끈마저 보잘것없어서 딱히 쓸모도 없는 사람들이, 김어준이 그간 해온 일을 순순히 인정하지 못하는 경우를 종종 봐온 나로서는 김어준과 정우성이 보여주는 케미가 마냥 부럽고 보기 좋았다.
정우성과 김어준이 사는 세상에서 나도 살고 있지만, 나는 그들처럼 열정적으로 나의 삶을 소비하지 않은 탓에 내가 만든 세상과 그들이 만든 세상의 거리가 새삼 멀게만 느껴졌다. 내게는 멀고도 아름다운 그 세상이 화면 속의 세계에만 있다는 현실은 내가 살아온 시간들에 대한 반성을 불렀다.
그래도 지지와 응원을 보내는 우호적인 대중의 1인으로 그들이 만들어가는 세상에 동참하고 있다고 위로한다면 지나치게 자족적일까, 그래도 어쨌든 보기 좋은 사람들과 동시대를 산다는 것, 그들의 행보를 지켜볼 수 있다는 것, 그것만으로도 이 또한 기쁘지 아니한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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