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통과 관계

자존심과 자존감의 차이

아난존 2018. 4. 4. 04:03




과도한 경쟁 탓일까, 헬조선에선 유난히 시기 질투가 지나치다. 내가 불우이웃이 되기 전에는 그 사실을 잘 몰랐다. 비교의식이 삶의 동력이 된다는 걸 진작 알았다면 내 인생도 달라졌을까, 나의 불운에 상대가 안심한다는 사실을 어린 시절에 알았다면 나는 좀 더 깊어졌을까.


최근 외국에 공부하러 나간 지인이, 외국인들 중엔 순수하고 심플한 사람이 많아, 하던 말이 머리에 남는다. 마침 나도 가까운 사람이 나의 불행에 자신도 모르게 웃음을 흘리는 것을 보고 난 직후라, 지인의 그 말에 엄청 동조해 버렸지만..... 그 지인이 외국에서 누구의 경쟁상대도 아니기 때문에 받는 대접이란 생각도 든다.

 

인간은 왜 이렇게 허접하게 만들어졌을까, 아님 내가 잘못 살아서 이런 사람들, 남의 작은 행운에도 배 아파하는 소인국에 갇혀 버린 것일까, 아님 지금 우리 사회가 특별히 악인도 아닌, 그저 보통 사람들을 벼랑 끝에 몰아서 악으로 깡으로 살게 만든 것일까, 그래서 분노로 불면의 밤을 지새우는 서럽고 억울한 사람들 천지가 되어 버린 것일까.

 

그러나 이러니저러니 해도 나는 그냥 나다, 불행의 밑바닥에 있어도, 운 좋게 일이 잘 풀려도, 그냥 나는 나다. 남의 불행으로 나를 위로하는 건 자존감 낮은 행동이다. 적어도 그건 나에 대한, 자기 스스로에 대한 예의가 아니다.

 

나 자신에 대한 예의, 그건 자존감의 문제이지 자존심의 문제가 아니다. 흔히 자존심 상한다는 말을 많이 한다, 사실 우리는 누군가의 자존심을 다치게 할까 봐 꽤나 눈치를 보며 살기도 한다. 그걸 못하면 눈치 없다는 말을 듣는다. 그깟 자존심이 뭐라고, 얼마나 내세울 게 없으면 자존심밖에 남은 게 없단 말인가.

 

정직하지 못한 삶을 강요받는 것, 그건 우리 인간이 자신에 대해 감출 게 많고 숨길 게 많아서일 것이다. 그러니 정직하게 살아도 자유로운 삶, 그게 내 자신을 지키며 사는 삶일 텐데, 그게 참 어렵다. 그래서 니체의 삶은 엉망진창이 되어 버렸다. 자신은 타인에게 이해받지 못하지만 그래도 인간을 이해해 보려고 애썼던 것, 그것이 그를 정신분열에 이르게 한 원인이 아닐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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