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이를 먹을수록 상대의 언어를 이해하는 일이 점점 더 어렵게 느껴진다. 왜일까? 그건 서로의 경험치가 다른 만큼 언어의 결도 그만큼 다르기 때문이다.
그런데도 우리는 소통을 하고 있다고 착각한다. 그러나 우리의 대화는 거의가 일방이다. 한쪽에서 자신의 언어를 일방적으로 사용하면 상대는 그것을 일방적으로 해석하는 형식이다. 그 해석에 문제가 없으면 소통이라고 생각하지만 사실 그 과정에서 주고받은 것이 없으므로 소통했다고 하기 어렵다.
이런 일방성이 한쪽에 의해 수용되지 않으면 갈등이 발생한다. 그래서 수평적인 관계를 표방하는 사이일수록 갈등이 자주 폭발한다.
내가 세상의 기준이었던 때가 있었다, 사춘기…. 그러나 세상이 나를 중심으로 돌아가는 게 아니란 걸 깨닫는 순간 사춘기는 끝이 나고 남의 언어를 해석하기 시작한다. 물론 '나'가 중심인 세상이 붕괴되는 충격을 겪지 않은 사람들은 여전히 자신이 우주의 중심인 채로 살아간다.
헤르만 헤세의 언어로 말한다면 알을 깨고 나오는 것이 사춘기의 끝이다. 허나 알 밖은 위험하고 알속은 안전하다. 그러니 웬만하면 알을 깨고 나가고 싶지 않다. 문제는 알속에 머물려 해도 외부에 의해 알이 깨진다는 것이다.
그래도 자신의 힘으로 알을 깨고 나오는 사람들은 매우 드물다. 그래서 우리의 삶이 고달프다. 타자에 의해, 환경에 의해 나를 둘러싼 껍데기가 강제적으로 깨지기 때문에.
그러니 어쩌랴, 어차피 깨져야 할 세계라면 내 힘으로 깰 수밖에. 그것이 추하지 않게 나이를 제대로 먹는 길이 아닐까 싶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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