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교와 인간

예수 시대의 시작

아난존 2017. 12. 26. 23:29



예수 시대의 팔레스티나는 여러 지역으로 분화되어 있었으며 기원전 4세기까지 헤로데가 통치했다. 이후 유다와 사마리아, 이두매아는 헤로데의 아들 중 하나인 아르켈라오(기원전 4-기원후 6)가 통치했고, 기원후 6년부터는 로마 총독이 통치했다. 산악도시인 예루살렘의 생활비는 무척 비쌌으나 큰 종교행사의 중심지여서 상업이 번창했다. 예수는 이런 상황에서 유대교인으로 성장하여 랍비로 활동했다. 그리고 그에 의해 하느님은 자비롭고 사랑이 많으며 부족한 우리를 너그럽게 돌봐주시는 신의 모습으로 재구성된다. 이로써 유대인의 하느님은 전 인류의 하느님으로 예수와 함께 세계사를 전환시키며 극적으로 태동한다.


예수는 인류 역사상 가장 신비로운 인물이다. 이천년 동안 이렇게 논란을 많이 불러일으킨 인물은 일찍이 인류사에 없었고 앞으로도 나오기 불가능할 듯하다. 예수만큼 과거의 유산에 기대지 않고 독자적인 세계를 이룩한 사람이 있을까. 그는 가난하고 연약하며 무지한 사람들에게 미래와 희망을 제시했다. 그는 지식도 재물도 없는 사람들에게 주눅 들지 말라고, 너의 잘못이 아니라고 위로한다. 종교가 할 수 있는 최대치의 역할이 예수로 인하여 생겨난 것이다. 그러나 바로 그런 매력 때문에 그리스도교는 권력에 악용되기도 쉽다.


지역종교인 유대교는 예수로 인해 세계종교로 환골탈태한 그리스도교와 대립해왔다. 하지만 그리스도교가 유대교의 토양에서 생겨났음을 부인할 수 없다. 더불어 이슬람교 역시 유대교와 그리스도교의 영향에서 자유로울 수 없음을 인정해야 한다. 따라서 인류를 지옥에 빠뜨려버린 아브라함의 종교인 이 세 종교에서 우리는 구원의 닻도 발견해야 하지 않을까 한다. 문제 속에 해답의 씨앗이 잉태되어 있듯이 그간 종교가 저지른 죄악을 이제 종교가 나서서 해결해야 하지 않을까 조심스럽게 생각해 본다. 인간이 종교를 버리고도 마음의 안식과 평화를 유지하며 살 수 있다면 그보다 더 좋을 순 없을 것이다. 그러나 우린 성인(聖人)이 아니며 현자도 아니고 지자(知者)도 되기 어려운 게 현실이다. 이 지점에서 종교의 역할이 요구된다. 가난하고 연약하며 무지한 사람들의 편에서 그들에게 지금의 이 삶은 당신의 탓이 아니라고, 더 나은 세상이 당신을 기다리고 있다고 위로해 줄 종교가 필요한 것이다.


신학을 공부하는 이유는 앞서 걸어간 사람들의 고뇌와 지식을 공유함으로써 좀 더 자유로운 신앙을 갖기 위해서일 것이다. 그리고 내가 얻은 자유를 타인들과 함께 나눔으로써 해방의 연대를 이루기 위함일 것이다. 그것이 이천 년 전 중동의 모래사막에서 새 바람을 일으킨 예수라는 사내의 바람이 아니었을까 생각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