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계인이 된다는 것

2022 대선과 에난티오드로미아

아난존 2022. 3. 8. 15:43

내일이면 대선이 끝난다. 사전투표율 36.93%, 역대 최고의 사전투표율이라 하나 사전투표 시행이 2013년부터이니 10년 된 제도가 점차 정착되는 현상으로 보인다. 다만 역대 최악의 비호감 대선인 만큼 높은 사전투표율이 양 진영에는 막판 결집의 신호로 수신된다. 안철수 단일화로 역풍이 불었을까 기대하는 진영과 순풍의 흐름에 속도가 붙었을까 희망하는 진영 서로가 높은 사전투표율이 자신들에게 유리하다고 하면서 내심 불안한 마음도 감추지 못한다. 정치권이 이번 선거만큼 국민 눈치를 본 적이 있었던가? 세대별 지역별 성별 점검하고 행여나 빠질세라 꼼꼼하게 눈치를 보고 또 본다.

 

국외적으론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국내적으론 산불재난 국가위기경보 '심각' 발령, 그리고 이제는 익숙해진 코로나19의 일상화 등 안팎으로 아포칼립스 상황. 다시 말해 전염병, 전쟁, 자연재해 등 그야말로 종말? 그렇다! 이 상태가 그대로 더 이어지면 세계는 다 같이 초특급 위기의 설국열차 행. 러시아의 몽니는 점입가경이고 3차 대전을 원치 않는 서방국은 물리적 충돌 대신 러시아의 경제 고립 선택, 그로 인한 세계 경제의 위축과 대혼란이 염려되는 시점.

 

그러나 일단 대한민국은 대선이 모든 세계사적 카오스보다 우선한다. 유난히 발달한 정치적 민감도로 우리 사회의 구석구석 쌓인 비리, 이제는 좀 지겹기까지 한 적폐가 총체적으로 쏟아지고 기득권 카르텔이 뭔지, 반기득권도 비기득권도 기득권이 되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지 적나라하게 드러나는 중이다. 너만 거짓말할 줄 알게? 나도 한 거짓말해, 너만 음모론 짤 줄 알게? 나도 한 음모론 하지, 너만 출세하게? 너만 성공하게? 나도 너만큼 충분히 비열하고 대단히 교활해, 나 절대 너한테 안 져. 왜냐고? 전쟁에서 거짓말은 전략이고 속임수는 지략이야, 선수끼리 왜 이래?

 

대체 그 끝은 어디를 향해 가는 걸까? 한국 사회는 이미 블랙홀이다. 대선판이 빨아들인 이 엄청난 밀도와 중력이 너도나도 상대를 발가벗겨 알몸을 만들고 있다. 오 마이 갓! 이대로 괜찮을까? 아마도? 개개인의 욕망이 용암처럼 분출하고 있는데? ‘우리라 쓰고 내 편이라 읽는데? ‘정의라 쓰고 이익이라 읽는데? ‘공정이라 쓰고 신분이라 읽는데? 아마도? 위선이 상식이 되니 더 이상 위선은 탐욕을 가리지 못하고, 그래서 다행인 건 위선에 사람들이 속지도 않는다는 것이다. 가식이 표준이 되니 더 이상 가식은 상처를 주지 못하고, 그래서 다행하게도 가식에 사람들이 선동되지도 않는다는 것.

 

그렇다면 우리 사회야말로 민주주의가 절정? 투명하게 속셈이 드러나고 개방적으로 야비해도 더 이상 아무도 상처받지 않는다. 상처는 구태가 되고 구태는 반나절도 버티지 못하는 역동적인 사회. 너만 의뭉한 줄 알아? 나도 의뭉해. 어둠은 빛을 굳이 이기려 하지 않고 거짓은 참과 굳이 싸우지 않는다. 쪽수가 힘인 민주주의에선 어둠의 수가 많으면 빛이 흐릿해지고, 거짓의 수가 많으면 참이 눈치를 보거나 침묵을 요구받는다. 그래도 어쩔 것인가, 소수는 다수에게 배려를 바라고 다수의 아량에 기대야 하는 게 민주주의인 것을. 그래도 그것이 독재보단 천만 배 낫지 않은가.

 

그러니 어쩌랴, 시대가 아포칼립스 시대인데, 그래서? 그러니 안심하시라, 칼 융이 말했잖는가, '에난티오드로미아'라고, 그게 뭔데? 우리가 잘 아는 태극의 원리, 음이 다하면 양이 시작되고 양이 다하면 음이 시작된다. 그래서 극과 극은 통한다. 이건 선악도 시비도 아니다. 자연의 이치고 세상의 운용원리일 뿐, 우리나라 대선만 봐도 항상 직전 대통령과 반대 이미지를 가진 후보를 선호하지 않았던가. 지금의 양당 후보 둘 다 그렇다. 이번 대선이라고 다르랴, 이 후보나 윤 후보나 문통과는 매우 다른 이미지, 상징, 행동유형 등을 보인다.

 

극은 극을 품고 있다. 극단적 민주주의는 인민독재로 갈 여지가 있고, 절대선은 통제와 억압을 전제한다. 우리만 옳다 하는 진영은 타자의 억울함이 들리지 않고, 나만 사람이다 하는 인간은 타인과 공명하지 못한다. 그래서 절대권력은 절대 부패하고 그래서 견제가 필요하고 그래서 한 번씩 뒤집힌다. 그러므로 국민이 뒤집을 때 탈 없이 뒤집히는 정권은 순리에 맞는 것이다. 이때 뒤집힘을 거부하게 되면 아포칼립스의 상태가 더 길고 더 깊어진다. 뒤집혀야 새 세상이 오는데, 쉽게 물러나지 않는 구권력으로 인해 혼란이 가중되는 것이다.

 

세상의 변화에 가속도가 붙은 21세기, 이 시대를 따라가지 못하겠다면 차라리 물러서서 구경꾼이 되시라. 그게 미래와 후손들에게 좋은 일을 하는 것이다. 그러나 변화하는 시대가 흥미롭고 우리 사회가 어디로 갈지 궁금하다면 두근두근 호기심을 갖고 이 시대의 속도에 올라타시라. 꿈과 모험은 어린 시절에만 있는 가상의 세계가 아님을 보게 될지 모르는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