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19로 수세에 몰리고 눈치만 보던 종교계가 갑자기 요동치는 대선판에서 주목받고 있다. 이게 무슨 때아닌 종교전쟁인가, 가뜩이나 비호감 대선에 유권자들의 짜증이 배가 되고 있는데 삽질도 이런 삽질이 없다. 말이 좋아 비호감 대선이지 본질은 혐오 대선 아닌가, 거기에 혐오의 숟가락을 얻는 종교계, 대단하단 말밖에 안 나온다. 할렐루야!
시작은 정청래 의원이 사찰 통행료를 ‘봉이 김선달’이라고 발언해서, 왜? 작년 국정감사에서 해인사 문화재 관람료를 비판하며 평소대로 화려한 말빨을 과시하다가, 근데 왜 지금 스님들이 승려대회를 하는데? 왜냐고? 그야 대선판이니까! 그렇다, 유권자가 힘을 갖는 유일한 시간, 선거 기간, 스님들도 유권자이니 이 기회를 놓치고 싶지 않겠지. 인정!
불교계는 이왕 판 엎은 김에 그간 서운했던 점들도 들고나왔다. 대통령이 가톨릭 신자라 가톨릭에 유리한 정책들, 이를테면 가톨릭 성지순례길 지원사업 같은, 어쩌다 보니 불교랑 가톨릭의 성지가 겹칠 때도 있었다. 거기다 교황 ‘알현’까지? 이 표현은 분명 불만의 표시다. 우리가 가톨릭 국가야? 이런 마음. 우리나라는 정치와 종교가 분리된 사회라고!! 맞다, 우린 정교일치의 사회가 아니다. 다만 정치나 종교나 자본주의 아래 있다 보니 ‘돈’의 문제가 대선 타이밍에 터진 것뿐.
그래서 이번엔 지난 1월 27일 ‘무속정치ㆍ비선정치를 염려하는 그리스도인 선언자 800여 명 일동’이 ‘비선정치ㆍ무속정치를 염려하는 그리스도인 선언’을 발표했다. 왜냐, “국가를 파멸로 몰아가는 무속정치를 규탄”하려고, 그래서? “한국교회여, 이 나라를 주술에서 구하라”를 외쳤다. 이에 대한 근거로 성서 구절도 동원됐다.
“내가 또 복술을 네 손에서 끊으리니 네게 다시는 점쟁이가 없게 될 것이며” (미가 5:12)
아하! 신심 깊은 그리스도인들이 “바알 선지자 850명과 맞서 싸운 엘리야의 영적 투쟁을 기억”하며, “예수의 고통 역시 소환”해서 “예수의 거룩한 영을 받은 기독교인들은 이 시대의 이세벨, 그를 추동한 악한 영의 세계와 짝할 수 없”기에. 그렇구나! 더구나 “역병이 창궐하고 불평등이 심화하였으며 기후붕괴로 대전환이 요청되는 시점에 무속인들이 괴력난신 되어 나라를 어지럽히고 있”으므로, 우리나라의 국운과 인류의 미래가 애달파서 “3.1정신과 4.19, 6월 항쟁과 촛불혁명을 이끈 기독교의 시각에서” 작금의 “비선과 무속정치”를 근절하고자, 왜냐면 그건 “대한민국의 수치이고 인간성에 대한 모욕이며 영적 굴복이”기 때문에. 진짜?
이 신앙심 깊은 800여 명은 “무속 일반을 부정하지 않는다. 하지만 ‘복’과 ‘힘’을 지향하는 무속의 속성상, 그 타락과 오남용을 예의주시할 뿐이다.” 그러는데, 근데 이게 무속만의 속성인가? 기존 제도종교는 안 그렇다고, 가슴에 손 얹고 진짜 그래? “이번에 공개된 녹취록에서 우리는 접신한 한 여성의 ‘힘’ 사용설명서를 접할 수 있었다”고. 당연히 그런 여성을 두둔할 순 없다. 그러나 “신천지 압수수색을 방해한 일도 무속인들의 자문 탓이었다. 기성 교회를 허물기 위해 신천지가 저지른 악행을 기억할 때 우리는 이런 법 집행을 절대로 용서할 수 없다”는 주장은 또 뭔가? 신천지가 기성 교회에 악행을 저질러서 문제인 건가? 왜 자꾸 선을 넘지? 지나고 보니 코로나19 확산 문제는 기성 교회도 만만치 않았는데?
이에 질세라 지금 ‘천주교정의구현전국사제단’에서도 “무속이 노골적인 대선”을 막기 위해 서명운동을 하고 있다. 왜? “이성과 신앙의 조화와 종합을 위해 분투했던 가톨릭교회의 정신으로는 도저히 용납할 수 없는 일”이기 때문에, 더하여 “신앙인일수록 이성적이어야” 하기 때문에. 그럴 수 있다, 이성은 소중하니까! 그런데 “건강보험료 수십억 원을 떼어먹어도 무죄를 선고하는 그 입이 입시에 반영되지도 못하는 표창장 의혹만으로도 징역 4년을 명령합니다.” 이건 너무 진영논리 아닌가! 이런 주장은 선 넘은 거다.
한쪽은 오직 ‘선’이고 다른 한쪽은 오직 ‘악’인데 이게 마녀사냥이지 무슨 이성인가! 그런데 자꾸 “우리가 이웃 종교에 경의를 표하면서도 주술을 미워하는 이유도 ‘이성’이라는 하느님의 선물을 부정하기 때문”이라며, 현실 정치에서 특정 세력을 지지하니 이걸 어떻게 “우리가 주술의 지배를 거부하는 것은 신앙을 지키기 위한 최소한의 고백적 행동”이라고 액면 그대로 받아들이느냔 말이다. 왜들 이러심?
제도종교는 규모가 클수록 유권자인 신자 수도 많다. 그러니 대선 후보들도 종교인들의 눈치를 안 볼 수 없다. 그래서 불교계의 승려대회가 비난받는 거다. 왜 하필 지금 이러지? 이 사건만으로도 국민은 피로한데, 이번엔 무속인 논란이 일자 그리스도계가 들고 일어났다. 백번 양보해 나라의 안위를 걱정하는 참된 신심의 발로라 치자, 그럼 문제점만 지적하면 되지 사회적 합의도 아직 안 된 정치 사안을 왜 종교의 이름으로 발언할까? 진영논리를 강화하는 주장으로 무엇을 얻겠다고.
페미니즘이 지금 왜 곤경에 처했는지 모르나? 약자를 내세워 정의를 선점한 뒤 나와 의견이 다른 쪽은 다 사탄 취급하니까, 이런 독선이 상대를 지치게 하니까 피하게 되는 거 아닌가! 이를 타산지석 삼지 않으면 제도종교도 같은 전철을 밟게 될 것이다. 세상이 어떻게 나만 선하고 나에 동조하지 않는 타인은 모두 악한 존재일까! 그게 ‘이성’이라면, 그런 이성으로 여전히 중세를 살고 있다는 건데, 창창한 21세기 포스트 모던 시대를 종교가 어떻게 넘어가려고 그러는 거냔 말이다.
그리고 더 쓸쓸한 일은 이런 종교계의 선언들은 자신들의 영토 안에서만 뜨겁고 의롭다는 것, 진정 그렇게 종교가 게토화 되길 원하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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