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계인이 된다는 것

누가 내 식탁을 치웠을까?

아난존 2021. 10. 26. 16:54

 

정치의 계절, 인터넷은 정치 기사로 홍수를 이루고, 내가 저 홍수의 범람에서 익사하지 않을 수 있을까, 의심이 든다. 팩트 체크? 하면 뭐해? 부분 진실은 전체를 허위로 만들고, 편식한 정보는 확증편향만 견고하게 해주는데? 그래서 정치 무관심층도 이해되고 진영논리에 매몰되는 것도 이해된다. 어쩌란 말이냐, 어찌 보면 그게 최선인걸.

 

어설프게 정치에 관심 가져봐야 내게 이익도 없이 개돼지 소리 듣기 쉽고, 괜히 입 밖으로 누구 괜찮다는 말이라도 해놓으면 금세 그 사람 방어해야 할 일이 터지니, 아직도 나는 사람 볼 줄 모르는구나, 하는 생각이 들어 쓸데없이 피곤해진다. 그럼 반성하지 말고 우기면 될까? 그 순간 거기가 내 바닥이 되는데? 인간은 그다지 현명한 존재가 아니다. 당연히 실수도 잦고 오류도 많다. 다만 그게 문제임을 깨달으면 다음 단계로 넘어가면서 넓어지거나 깊어지거나 하겠지만 거기 멈춰서 우기기 시작하면 바로 거기가 내 바닥이 되는 것이다. 그러다 보면 나도 모르는 사이 정치의 홍수에 떠내려가게 된다. 그러니 어쩔 것인가, 관심을 안 갖거나 덜 가질밖에.

 

진영논리도 그렇다, 민주주의란 게 원래 쪽수 싸움이다. 다수가 선택하되 책임은 다 같이 지는 것, 그게 민주주의의 핵심이다. 지혜 싸움도 아니고 명분 싸움도 아니고 그냥 쪽수 싸움이다. 그러니 한 명이라도 내 편을 더 만드는 게 최선이고 내 편이 많을수록 최고가 된다. 그러기 위해 지혜나 명분을 동원하는 거지, 원래 설득의 근거가 쪽수이니 여론조사를 안 할 수 없고 여론조사에 좌지우지 안 될 수 없다. 그러니 누구는 여론에 편승하려다 익사하고, 누구는 여론을 조작하려다 익사하고, 누구는 여론을 왜곡하려다 익사한다. 그래도 어쩔 것인가, 불이익당하지 않으려면 진영의 우산 아래로 피할밖에, 그러다 한방에 폭우가 쏟아져 익사해도 그게 확률적으로 남는 장사가 된다.

 

괜히 익사하지 않으려다 말라 죽는다고? 그럴지도 모른다. 예수가 어떻게 죽었는가? 아무 진영 편도 안 들다가, 편만 안 들었음 괜찮은데 기득권 전체를 적으로 돌렸다가 기득권층의 미움을 받아 죽었다. 어떻게? 성전 매대 뒤집기 한 판으로! 누군들 남이 자기 밥상을 뒤집는 꼴을 내버려 둘까? 그 밥상이 약자의 고혈로 차려진 건 이미 문제가 되지 않는다. 그게 내 밥상이란 것만 중요할 뿐이다.

 

예수의 교훈을 익히 배운 현대인들은 그래서 남의 밥상 뒤집기는 내 목숨을 걸어야 한다는 걸 알고 있다. 그래서 영리한 사람들은 남의 밥상은 그대로 둔 채 그 밥상에 반찬도 더 챙겨주면서 대신 자신의 식탁을 따로 마련한다. 그리고 나는 이제 그들을 인정하게 되었다. 그래, 권력 있으니 휘둘렀겠지, 자기 밥상 지키려고. 그래, 내 밥상 지켜주는 이들이 친구고 동지지, 그런 게 진짜 결사체지, 그러니 나도 남의 밥상 지켜주는 이가 되어야 진짜 친구고 동지가 되는 것이다! 그래서겠지, 어쩐지 친구가 없더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