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계인이 된다는 것

2022 대선, 그 오징어 게임의 승자는?

아난존 2021. 11. 12. 20:58

 

일개 무지렁이 소시민인 나는 이번 대선이 매우 기괴하여 신비롭기까지 하다. 어릴 때는 교과서가 진리인 줄 알았고, 커서는 온갖 긍정의 교리가 진리인 줄 알았다. 아직도 미련하게 인과응보를 자연의 섭리라고 믿고 싶은 건 내가 가진 것 없는 소시민이라 그렇겠지? 이 정도의 생각을 할 만큼 나이를 먹긴 했지만.

 

아무튼 눈을 들어 세상을 보라! 오늘날 우리 세계의 질서는 오직 약육강식과 승자독식인데, 그럼 이 인류가 정말 진화하긴 한 걸까 싶다. 아랫것들이 분노하는 세상이니 이게 변화? 그럴 리가, 세상은 원래 아랫것들이 분노해서 바뀌어왔다. 공산주의 욕하지 마라, 아랫것들 무시한 나라가 공산화됐다. 그리고 다시 그 아랫것들이 원해서 공산주의에 자본주의가 도용됐다.

 

그런데 니체가 보면 지금 우리의 대선 후보들은 약자 중의 약자이다. 자신에게 정직하지 않고, 또는 정직할 수 없고, 타자의 욕망에 휘둘려 현재 자신이 무슨 말을 하는지조차 알지 못한다. 자신이 누구인지도 모르는데 권력을 잡았다고 자신을 되찾을까, 그 권력에 먹히겠지. 그 권력에 취해서 권력 중독자가 되겠지. 그렇게 절대 반지의 힘에 마취돼 골룸이 되겠지. 그런 골룸의 모습으로 국민은 개·돼지란 주문을 외우며, 동화책 벌거벗은 임금님의 실사판 주인공이 되겠지.

 

그런데 국민은 개·돼지란 프레임만큼 공허한 게 있을까, 그 개·돼지들의 마음을 살려고 내키지도 않는 사과를 하고, 그 개·돼지들을 속이려고 평생 감추고 살 수 있었던 비리에 전전긍긍하고, 자신의 출세에 수단으로만 생각했던 그 개·돼지들을 위한다는 거짓말에 자기 자신도 속고 있으니, 이 정도 되면 누가 더 개·돼지인가 싶다. 지지율을 위해 평소 관심도 없었던 정책을 흔들어대며 애교를 피우고, 한 표를 위해 평소 1g의 존중감도 없었던 개·돼지들한테 굽신거리니 말이다.

 

대선이란 오징어 게임에 추리닝 입고 직접 참여하고 있는 일련의 무리는 마지막 생존자를 위해 나머진 다 죽을 준비를 해야 한다. 잘못을 보고도 못 본 척, 사실을 알아도 모르는 척. 왜냐, 그게 게임의 규칙이니까, 게임 과정에서 내가 살려면 어쩔 수 없이 내가 속한 진영에 복종하지 않으면 안 되니까. 최후의 승자를 위해 그렇게 자신의 양심을 죽이고 정체성을 변질해가며 스스로 기꺼이 개·돼지가 된다. , 처음엔 돈 때문이었지만 일단 게임에 참여하면 그다음부턴 목숨이 걸린 일이므로.

 

그러니 게임에 직접 동참하지 않는 국민은 VIP석에서 유리창 너머로 구경만 할 일이다. 화낼 필요도 없고 절망할 이유도 없다. 이민을 왜 가나, 다른 나라라고 뭐 다른가, 게임이 돌아가는 판세를 보면서 게임이 공정하게 운영되는지 살펴보고 그나마 조금이라도 공정하게 게임을 이행한 쪽에 한 표를 행사하면 그만이다. 그런다고 세상 안 뒤집힌다. 우리 국민이야말로 식민지, 전쟁, 독재 다 겪고도 이만큼 생존해내지 않았는가. 국민은 개·돼지라며 갖은 아양을 떠는 그 무리 중 조금이라도 덜 싫은 쪽에 한 표를 행사하자. 더 싫어하는 쪽을 박살 내기 위해 한 표를 행사하면, 물론 이것도 개인의 자유고 선택의 문제지만, 그러면 그 후폭풍이 반드시 돌고 돌아 내게 다시 영향을 미치기 때문이다. 그것이 증오의 힘이다. 증오는 원망을 낳고 원망은 원한이 되어 돌아온다.

 

그러니 더 싫어하는 쪽을 박살 내는 한 표보단 덜 싫어하는 쪽을 지켜보기 위한 한 표가 그나마 이번 대선에서 한 사람의 투표권을 가진 국민으로서 할 수 있는 최선일 것이다. 물론 여전히 좋아하는 쪽이 있는 사람은 즐겁게 좋아하는 쪽을 지지하면 된다. 문제는 지지하는 정당도 후보도 없는 사람들, 그나마 상대적으로 낫다고 생각했던 정당이나 후보마저 잃은 사람들, 그런 유권자들이 투표를 포기하지 않으려면, 적어도 국민이 정치에 무관심해서 정치인과 그 주변인들이 마음껏 해 처먹는 걸 보고 싶지 않다면, 그래도 부정의 투표보단 긍정의 투표를 하는 것이 맞다는 얘기다.

 

미얀마, 아프간, 소말리아, 예멘, 필리핀, 에티오피아, 시리아우리가 막장 대선을 치르고 있는 이 순간에도 내전과 난민으로 죽을 만큼 고통받고 있는 사람들이 지구에는 넘쳐난다. 안타깝지만 우린 그들의 비극을 타산지석 삼을 수밖에 없다. 그러니 나 자신을 위해, 나의 안위와 존엄을 지키기 위해 포기하지 말고 투표하자. 민주주의는 내가 원하는 대로 사안이 결정되는 게 아니라, 내가 하고 싶은 말을 해도 그걸로 불이익을 당하지 않는 거니까.

 

그러니 혐오의 감정으로 복수심을 담아 표를 던지지 말자. 세상은 한 번도 공정한 적 없었고 인류는 한 번도 정의로운 적 없었다. 그러니 인정할 건 인정하고 버릴 건 버리자. 일단 나를 지켜야 국가도 있는 것이다. 그러니 추리닝 입고 오징어 게임에서 직접 뛰지 않는 사람들은 지지하는 후보가 다르다고 분노하며 막말을 쏟아내지 말자. 대체 왜 나와 가까운 사람들에게 그깟 정치적 소견이 뭐라고 무시하며 멀어지는가. 대체 왜 알지도 못하는 사람들끼리 온라인상에서 원수처럼 물고 뜯는가. 그거야말로 진짜 개·돼지가 아닌가

 

정치고관여층이든 저관여층이든 중요한 건 내가 나를 잃지 않고 사는 것이다. 나를 알지도 못하는 어떤 정치인을 위해 내가 아플 때 달려와준 가족을 무시하는 건 어리석은 일이다. 나란 사람의 존재 자체도 모르는 어떤 정치인을 위해 내가 힘들 때 위로해 준 사람과 멀어지는 건 한심한 일이다. 그리고 나와 일면식도 없는 사람에게 정치적 입장이 다르다고 악플을 다는 건 정말 소중하게 여겨야 할 내 자신을 함부로 다루는 일이다.

 

나는 나를 지킬 권리와 의무가 있다. 그런데 혐오는 나를 망치는 독극물이다. 그러니 우린 VIP석에서 내려가지 말자. 추리닝 입은 사람들만 오징어 게임에서 뛰게 하자. 우리 VIP들은 게임이 돌아가는 방식을 감시하고, 게임의 참여자들이 부정을 덜 저지르도록 관리하다가 마지막 순간에 각자의 한 표를 행사하면 되는 것이다. 그렇게 해서 최후의 승자가 결정되면 그 최후의 1인이 제대로 일을 하는지 또 감시하고 관리하면 된다.

 

우리에겐 투표권, 즉 게임 참여자들의 생사여탈권이 있지 않은가. 그러니 게임 참여자들이 VIP들을 개·돼지로 본다고 화내지 말고, 그렇게 오해해서 자신을 마음껏 드러낼 수 있도록 심적 거리를 두고 지켜보면 될 일이다. VIP들이 진짜 개·돼지가 되는 건 자신을 게임 참여자들과 동일시할 때이다. 그러니 무리하게 게임에 배팅하지 말고, 자신에게 무리가 가지 않을 정도로만 게임을 즐기도록 하자.